▲화양서원 묘정비(충북기념물 제107호)변종만
대원군에 의해 서원이 철폐된 지 150여년 만에 화양서원이 복구를 마치고 제 모습을 되찾았다. 화양서원 뒤에 있는 만동묘는 송시열의 유언에 따라 그의 제자들과 노론의 유림들이 건립한 것으로, 명나라의 마지막 두 황제인 신종과 의종의 제사를 지내던 사당이다. 명나라 황제를 제사지내는 것이 옳지 않다는 대원군의 판단에 따라 고종2년(1865년)에 철폐되었다가 이번에 화양서원과 함께 복원되었다.
만동묘의 역사와 유래를 기록한 만동묘정비(충북기념물 제25호)가 만동묘 중간지점에 있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글자를 쪼아 내용을 훼손한 뒤 땅속에 묻은 것을 찾아내 세운 것이다.
우암의 삶은 참 파란만장하다. 숙종 15년(1689년)에 경종을 왕세자로 책봉하자 시기상조라며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83세에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 유배를 가던 송시열이 풍랑을 피하기 위해 잠깐 보길도로 피신을 하는데 이때 자신의 심정을 담은 시를 바위에 새겨놓았다. 바로 보길도의 동쪽 바닷가에 있는 글씐바위인데 탁본하는 사람들이 먹물자국을 많이 남겨 글씨를 알아보기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