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대사이정근
무학대사 영혼에 비수를 꽂았다. 무학대사는 보통 사람과 똑같이 죽음 앞에 두려워했고 시신에서 사리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학대사에 꽂힌 비수는 그대로 불교에 꽂혔다. 불교 개혁이 종착점에 다다른 것이다.
승려이면서 왕사였던 무학대사 해체 작업의 신호탄이다. 백성의 우상이었던 무학대사를 해체하여 저잣거리로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백성은 단순하다. 백성은 미래지향적인 청사진보다도 영웅 까발림에 환호한다. 한 마리 학처럼 고고했던 존경의 대상이 해체되어 자신과 같다는 것이 확인되었을 때 자신의 죄업에 대한 면죄부를 받는 듯한 착각에 빠지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요즈음 회자되고 있는 네거티브도 그 범주에 속한다. 백성들의 가슴에 새겨진 우상을 해체하는 것은 통치술의 하나다.
자초는 1327년 고려 충숙왕 14년에 경상도 합천 상기에서 농부 박인일의 아들로 태어났다. 17세에 출가하여 소지(小止)의 제자가 되었으며 혜명국사(慧明國師)로부터 불법을 배웠다. 진주 길상사(吉祥寺)와 묘향산 금강굴(金剛窟)에 머물며 능엄경(楞嚴經)을 파고들던 그는 더 깊은 불도를 배우기 위하여 원나라 연도(燕都)에 갔다. 여기에서 그의 스승 나옹을 만났다.
자초는 일반 백성들에게 무학대사라고 더 알려져 있다. 자초에 대한 설화가 기록되어 있는 순오지, 대동기문, 지봉유설, 연려실기술 등에는 많은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거나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다. 분명 경상도 합천 상기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의 탄생지는 여러 곳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