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헨게리 주변의 작은 언덕황정일
'아프리카의 스위스'라 불리는 르완다
우간다 키소로에서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로 가는 육로는 두 가지. 옛 반군들의 활동지역으로 치안이 불안한 시아니카(Cyanika) 국경을 바로 통과하는 방법과 카발레로 되돌아갔다가 가투나(Gatuna) 국경을 통과하는 방법이다. 시아니카는 가깝지만 불안하다는 점이 단점이고, 가투나는 안전하지만 멀리 되돌아가야 한다는 게 단점이다.
나는 약간 위험이 있더라도 직접 시아니카를 통과해 루헨게리를 거쳐 키갈리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무엇보다도 전날 왔던 카발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낭여행객은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듯이 온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 법. 어렵고 힘들더라도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것이 배낭여행의 묘미이다.
시아니카 국경의 수속은 간단했다. 미국 돈 60달러를 내자 르완다 여행 비자가 바로 나왔다. 시아니카 국경이 위험하다고 알려져 유럽 여행객들이 대부분 카발레를 거쳐 가투나 국경으로 가는 길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국 여행객들은 나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수속을 마치는데 1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나는 쓰고 남은 우간다 화폐를 르완다 화폐로 바꾸었다. 미국 돈 1달러는 우간다실링으로 1900원이었고, 르완다프랑으로는 580원이었다. 1르완다프랑은 3우간다실링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르완다 국경으로 넘어가자 루헨게리까지 가는 미니버스가 있어 바로 올라탔다. 루헨게리까지 가는 버스요금은 400르완다프랑이었다. 르완다의 버스는 다른 아프리카 버스와 달리 승객이 찰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승객이 70~80%밖에 차지 않았는데도 바로 출발시간에 떠났다.
우간다 쪽과 달리 도로가 국경에서부터 루헨게리까지 아스팔트로 멋지게 깔려 있었다. 루헨게리에서 키갈리로 가는 도로 역시 마찬가지로 잘 포장되어 있었다. 르완다 대학살 이후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원조를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시설(SOC)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고 한다.
내 옆에는 아기를 등에 업은 젊은 아주머니가 탔다. 아이가 엄마의 등과 좌석 뒷받침 사이에 끼어서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아기를 앞으로 돌려서 애기보를 풀어주자 금세 환하게 방긋 웃는다. 엄마 젖을 물리자 아기의 표정이 갑자기 싱숭생숭이다.
아기 엄마는 100프랑 지폐를 머리를 두른 스카프 끝에 돌돌 말아서 다시 묶었다. 꼬깃꼬깃 손때가 묻은 100프랑을 보물 숨기듯 스카프에 보관하는 것이었다. 스카프가 돈 주머니 역할을 하고 있었다.
르완다의 모습은 '아프리카의 스위스' 또는 '천 개 언덕의 나라'라는 말이 실감나게 아름다웠다. 루헨게리와 키갈리로 오는 동안 크고 작은 수많은 언덕을 넘고 또 넘어야 했다. 불레라 호수와 루혼도 호수 등 수많은 호수들이 산 계곡에 푸른 물을 머금고 있었다.
도로 옆에는 바나나와 채소, 닭 등을 파는 거리시장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르완다는 온통 푸른 산과 호수로 둘러싸인 언덕의 나라이다. 구름 위의 푸른 하늘을 달리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시아니카에서 루헨게리로 오는 길은 마운틴고릴라가 사는 르완다 쪽의 볼캉(Volcan. 화산)국립공원의 산허리 밑을 끼고서 달려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