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기 직전의 달내마을 모습정판수
비가 내립니다.
달내 마을에 꿀비가 내립니다.
반 년 만에 들리는 낙숫물 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홈통을 타고 내려오는 소리가 무한중주(無限重奏)의 교향악을 연주하는 듯합니다.
큰 홈통을 타고 내리는 소리는 크르르릉 크르르릉 …
중간 홈통을 타고 내리는 소리는 그르르르 그르르르 …
작은 홈통을 타고 내리는 소리는 기리리링 기리리링 …
잎사귀를 굴러 내리는 소리는 또르르르 또르르르 …
떨어져 흘러가는 소리도 다릅니다.
쭈르르르 쭈르르르 … 쪼르르르 쪼르르르 … 조리리리 조리리리 …
상춧잎에 내리는 비, 뽕나무에 내리는 비, 지붕 위에 내리는 비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다 다르지만 아름답습니다.
소리가 아름다운 건 그만큼 고맙기 때문이겠지요.
이웃 늘밭마을 논에 심은 모가 타들어가고 있다는 소식에,
우리 마을 뒤 머든마을 밭작물이 내뱉는 신음 소리에,
뽕나무에 매달린 오디가 검은 빛을 잃고 누렇게 되는 안타까움에,
한 달음에 달려온 듯 고마운 꿀비가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