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원암 공양주 '송 보살님', 송기순 할머니를 찍어 드린 사진이 나홀로 보는 영정사진이 되고 말았다.송성영
올봄 '송 보살 할머니'의 사진을 찍어 드렸다. 할머니는 사진을 찍으면서 새색시처럼 쑥스러워했다. 여기저기 방향을 틀어 가며 수십 장의 사진을 찍었다.
"웃어 보세유, 에이 참, 환하게 웃어 보시랑께, 할머니가 무슨 새색시유."
"에이참, 뭔 놈의 사진을 그러케 많이 찍어유?"
"혹시 알아유? 할머니 돌아가실 때 영전 사진이 될지…."
그 말이 씨가 된 것일까? 그 사진들이 나 홀로 보는 영정 사진이 되고 말았다. 오늘(15일) 아침 송 보살 할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일 년 열두 달 특별한 날은 제외하고 늘 절집에 머물러 있던 할머니였는데, 요 며칠 가족들이 있는 집에 머물다가 돌아가셨다.
송 보살, 송기순 할머니는 갑사 내원암에서 공양주 보살로 10여 년을 생활하셨다. 절집을 들락거리는 온갖 사람들에게 밥을 해 먹이셨다. 그냥 할 일 없이 머리 식히러 온 사람, 뭔가 간곡하게 빌러 오는 사람, 부부 싸움하고 온 사람, 사업 번창하게 해 달고 손바닥 비비는 사람, 좋은 세상 만들겠다고 부조리한 세상과 싸우다가 지쳐 쉬러 온 사회운동가들도 있었다. 송 보살 할머니는 그 모든 사람을 가리지 않고 절밥을 해 먹였다.
나도 먹었다. 아내도 우리 집 아이들도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수없이 받아먹었다. 아이들을 위해 누룽지까지 챙겨주시던 송 보살 할머니, 떠나보낼 때는 부처님 공양전에 올렸던 떡이며 과일이며 제물들까지 챙겨줬다. 사람이 먹지 못할 음식은 따로 골라 닭이며 개들을 위해 챙겨주시곤 했다.
송 보살님은 고집불통이셨다. 대부분 공양주 보살님들은 절집에서 월급을 받고 밥을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송 보살 할머니는 부처님 모시는 일인데 무슨 돈이냐며 한사코 월급을 받지 않았다. 내원암을 오가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호랑이 할머니였다. 공밥 먹는 사람들을 그냥 놔두질 않았다. 풀을 뽑게 하든지 장작을 패게 하든 어떤 일이든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