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살고 싶은가? 생명을 나누라

인간 최고의 고귀한 결단 '장기기증'... 당신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등록 2007.06.16 12:31수정 2007.06.16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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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국공항공사 관계자로부터 후원성금을 전달받고 있는 수아와 어머니 옥윤정씨

한국공항공사 관계자로부터 후원성금을 전달받고 있는 수아와 어머니 옥윤정씨 ⓒ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세상이 메말라서 정말 살기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당신들이 있어 따뜻하고 살만합니다. 우리 수아를 살려주고 함께해준 좋은 분과 세상에 정말 감사합니다."


지난해 12월 수아(2살·수원시 수정구)의 때늦은 돌잔치가 열렸다. 이 해 5월이 생후 1년째였지만 당시는 생사를 넘나들던 시기여서 돌잔치를 할 사정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촛불처럼 꺼져버렸을지도 모를 수아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방긋방긋 웃는다. 자식을 잃을 뻔했던 수아 어머니 옥윤정(34)씨가 목매인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했다. 수아에게 간을 기증한 박광은(41)씨는 이를 지켜보면서 감격스러운 듯 눈가를 훔쳤다.

2005년 5월에 태어난 수아는 두 달 만에 간경화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다. 간 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을 잃게 될 자식을 두고 수아 어머니는 사회 단체와 언론에 간절하게 호소했다.

"우리 아이는 간이식이 필요합니다. 곧 이식받지 않으면 3~4개월을 버티지 못할 거라고 합니다. 모두 가망 없으니 아이를 포기하라고 합니다만 전 아직 아이의 생명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수아 어머니의 간절한 사정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된 박광은씨가 지난해 1월 간 기증 이식 수술에 나서면서 수아가 살아나게 된 것이다.

수술하고 한 달여쯤 지나자 수아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수아가 웃었어요." 태어나서 처음 본 웃음! 어머니는 참 기뻤던 모양이다. 또 "수아가 배고프다고 칭얼대요"라며 신기해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팠던 수아는 여느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전혀 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아 어머니는 여느 어머니처럼 아이가 변하는 모습에 신기해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과정을 뒤늦게 경험하고 있었다.

뇌사자 고 김상진씨의 고귀한 생명 나눔


a 아들의 장기기증을 통해 새 생명을 찾은 수혜자들을 포옹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고(故) 김상진씨의 아버지 김용대씨

아들의 장기기증을 통해 새 생명을 찾은 수혜자들을 포옹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고(故) 김상진씨의 아버지 김용대씨 ⓒ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내 아들 한 사람 생명으로 이렇게 건강한 여러분을 뵈니까 내 자식이 다시 살아온 것 같습니다. 내 아들의 삶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아 기쁩니다."

지난 2005년 11월 고(故) 김상진(31)씨 1주기 추모식. 뇌사한 아들의 장기 기증을 통해 건강을 되찾은 수혜자 7명 가운데 이날 추모식에 참여한 5명을 차례차례 포옹하던 아버지 김용대씨는 마치 자식이 되살아난 듯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결혼 두 달 만인 2004년 11월 뇌동맥류 파열로 갑자기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졌다. 부모가 장기 기증을 하면서 비극으로 끝났을지도 모를 김씨는 7명에게 장기를 나누면서 생명 나눔의 꽃을 피웠다. 당시 8만여 명의 '뇌사시 장기 기증자' 가운데 첫 번째로 서약을 지킨 김씨의 사연은 이후 공익광고로 제작돼 국민에게 감동을 준 바 있다.

지상 최대의 불가사의는 "모든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 이라고 한다. 현대인의 최대 관심사는 웰빙(Well-being). 방송 프로그램의 제목을 봐도 '잘 먹고 잘 사는 법' '웰빙 맛사냥' '비타민' 등등 온통 잘 먹고 잘사는 법에 관심이 쏠린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런데 어떻게 죽을 것인가? 잘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등에 대한 질문은 거의 하지 않고 산다. 자살이 급증하고, 전쟁과 테러, 기근과 자연재해로 인한 엄청난 죽음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지금도 주변 가까이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지만 그것은 TV 속의 그림으로만 보는, 나완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웰다잉(Well-dying), 웰엔딩(Well-ending)없는 웰빙은 없다. 잘 살아야 잘 죽고, 잘 죽어야 잘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잘 죽는다는 것은 어떤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지에 달려 있다.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수도 있고, 아름다운 정신을 남길 수도 있고, 국토를 위해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여 '산골'하라는 유언을 남길 수도 있다. 삶의 마지막 정점인 죽음, 아름답고 축복받은 죽음, 생명으로 승화된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장기기증이다.

장기기증이란?

a 2006년 결혼 20주년을 맞은 조성현(47)·전형자(45)씨 부부가 같은 해 6월 1주일 간격으로 간과 신장을 기증했다. 공무원인 조씨는 지난 2001년 8월에도 신장을 기증했다.

2006년 결혼 20주년을 맞은 조성현(47)·전형자(45)씨 부부가 같은 해 6월 1주일 간격으로 간과 신장을 기증했다. 공무원인 조씨는 지난 2001년 8월에도 신장을 기증했다. ⓒ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장기기증이란 생존 시에는 신장 하나 또는, 간이나 췌장의 일부분을 나누고, 죽었을 때는 더 이상 필요 없는 장기를 기증하여 다른 생명을 살리는 생명나눔운동이다. 생전에 장기기증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숭고한 일이지만 장기기증의 본래 뜻은 사망했을 때 장기를 기증하는 것이다.

장기이식수술은 현대의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첨단 의술이다. 그러나 장기기증을 했다고 해서 어떤 이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기증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생존시 기증하는 방법 ▲뇌사가 되었을 때 기증하는 방법 ▲심장사 이후에 기증하는 방법이 있다.

생존시 기증할 수 있는 장기로는 혈액 기증이 가장 보편적이다. 이를 비롯하여 백혈병 등의 혈액암 환자에게 기증하는 조혈모세포(골수), 신부전 환자에게 주는 신장 기증, 그리고 간이나 췌장의 50%가량을 떼어내는 부분 장기 기증 등이 있다. 외국에서는 두 개의 폐 중 한쪽을 떼어 기증하는 사례도 종종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시도되지 않고 있다.

조혈모세포는 자기가 가진 조혈모세포의 5% 가량을 우리 몸에서 가장 큰 골반 뼈에서 특수 주사바늘로 뽑아 환자에게 수혈하듯이 이식한다. 이때 마취를 하기 때문에 통증은 없지만, 마취에서 깨면 약간의 통증이 있을 수 있다. 기증자는 병원에서 하룻밤만 자고 퇴원하면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채혈된 조혈모세포는 2주일 정도가 지나면 혈액처럼 다시 채워진다.

조혈모세포 기증은 혈액형과는 상관없이 조직형(유전자형이라고도 한다)이 맞아야 하는데, 타인과 조직형이 일치할 확률은 5만분의 1 확률, 그러므로 국내의 환자들이 기증자를 찾아 이식을 받으려면 적어도 10만 명 이상의 등록자가 있어야 한다.

신장이나 간 기증 등은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으나, 부분 췌장기증은 아직 국내에서도 크게 활성화되지 않았다. 췌장이식은 인슐린이 분배되지 않는 소아당뇨 환자에게 필요하다.

생존시 기증하는 것이 장기기증의 본뜻은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한 생명을 살린다는 의미에서는 더 없이 고귀하고 숭고한 결단이지만 그럼에도 기증자의 몸을 절개한다는 부담과 가족 간의 갈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뇌사자의 장기기증을 속히 활성화함으로써 생존 시의 기증이 필요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장사가 된 후에 기증할 수 있는 것으로는 각막, 조직 그리고 의학연구용으로 기증하는 시신 등이 있다. 각막은 검은 눈동자를 덮고 있는 얇은 막으로 콘택트렌즈와 같다. 각막은 5세 이상 70세까지 기증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 연령의 제한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전염병만 없다면 시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기증할 수 있는 장기이다.

조직 기증에는 피부와 뼈를 꼽을 수 있다. 기증된 피부를 화상 환자에게 이식하면 그 무서운 통증을 완화할 수 있으며, 2차 감염을 막아 생명을 구하는 것은 물론 환자가 장애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미국의 화상환자 사망률이 5% 정도인데 반해 우리 화상 환자의 45%가 사망하는 이유는 피부 기증이 전무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환자가 암이나 사고로 뼈를 제거해야 할 때 기증된 뼈를 이식하면 팔이나 다리를 절단하지 않아도 됨으로 장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밖에도 심장판막, 혈관, 근막 등 우리 몸의 모든 조직을 기증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조직기증을 위해 사체를 기증해 주면 최소 70여명 이상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

뇌사시의 장기기증은 좀 더 설명을 요한다. 뇌사란 뇌의 전기능, 즉 대뇌·소뇌·뇌간의 모든 기능을 상실하여 소생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때 인공호흡기를 삽입하여 산소를 공급하면 심장은 자동박동 능력에 의해 약 14일간 뛰게 된다. 이때 장기를 기증하면 심장, 간, 췌장, 폐 2, 신장 2, 각막 2 등 최대 9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고, 또한 이 때는 조직까지 기증할 수 있다.

등록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기증의사를 밝힐 수 있다. 등록방법은 장기기증 단체의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등록하거나 유선으로 등록서를 신청해서 받은 후 작성하여 우편으로 관련 단체에 보내면 된다. 등록하면 각 단체에서는 등록증을 보내주는데, 신분증과 함께 가지고 다니거나 신장기증 스티커를 신분증에 부착하면 된다.

그냥 죽을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살 것인가

a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둔 21일 서울 시내 지하철역 50개 역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은 사랑의 장기기증 등록으로'라는 주제로 사랑의 장기기증 캠페인이 펼쳐졌다.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둔 21일 서울 시내 지하철역 50개 역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은 사랑의 장기기증 등록으로'라는 주제로 사랑의 장기기증 캠페인이 펼쳐졌다. ⓒ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가족 중에 사망이나 뇌사자가 발생해 장기를 기증하려면 장기기증 단체나 뇌사자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에 기증의사를 밝히면 된다. 사망시 각막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각 대학병원 안구은행에 연결하여 6시간 이내에 고인이 모셔져 있는 곳으로 가서 각막을 적출한다.

뇌사 시 장기기증은 2차례 이상의 뇌사 검사를 하고, 뇌사판정위원회에서 뇌사여부를 판정하면 급한 환자 순으로 장기이식을 받을 수 있도록 각 병원에 분배하여 수술하게 된다. 이때 뇌사 시 장기기증은 장례비와 위로금이 유족에게 지급되고 있다.

현재는 조직을 기증하기 위한 다양한 통로가 없어 불편하지만 최근 선진국형의 대한인체조직은행이 설립되어 활동을 시작하였으므로 그곳에 연락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또한, 조직은행이 설치된 대학병원을 통해서도 기증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은 장기매매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장기를 이식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판단한 상당수의 장기부전 환자들이 중국으로 원정 가서 장기 매매를 통해 이식을 받는 경우가 언론을 통해 종종 들려온다. 생명을 위협받는 환자와 가족으로서는 절박한 심정으로 시도했겠지만 이를 묵과해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장기기증이란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 후에 내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은 고귀한 결단이다. 그리고 장기부전 환자들에게 생명을 되찾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의 통로이다. 장기이식은 단순히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거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넘어, 한 가족의 삶을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꿀 뿐 아니라 공동체 의식을 형성시키는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테스트의 '나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라는 시는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울리는데, 나는 그 시 구절 중에 이 구절을 가장 좋아한다.

"그 때 나의 침상을 죽은 자의 것으로 만들지 말고 산자의 것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나의 몸을 산 형제를 돕기 위한 충만한 생명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하겠는가? 부디 'Say, Yes!'

덧붙이는 글 | 최승주 기자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사무국장을 지냈습니다.

덧붙이는 글 최승주 기자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사무국장을 지냈습니다.
#장기기증 #김상진 #웰다잉 #장기매매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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