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의 비파나무 전경홍광석
다시 비파나무를 만난 것은 어떤 동양화가의 전시장에서였다. 시원하게 그려진 비파 잎을 알아본 순간 시골 학교 현관 앞에 심어진 나무를 떠올리며 기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따뜻한 기후에서 자란다는 비파나무가 광주에서 자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또 종자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보다는 전세방에서 살림을 시작한 가난한 내 형편으로서는 비파나무를 심을 마당이 없었다.
우연히 목포에 갔다가 비파나무를 발견하고 비파나무 아래 씨가 떨어져 자란 작은 묘목을 흙에 싸안고 왔지만 마당이 있는 집을 사기 전까지 비파나무는 화분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 겨울이면 실내에 들여놓고 애지중지 키웠지만 좁은 화분에서 시달리던 나무는 고작 두 그루만 살아남았다.
지금 마당에 자라는 비파나무는 1988년, 현재 사는 곳으로 이사한 후 얼어 죽을 것을 염려하면서 모험하는 심정으로 심었던 두 그루 중의 하나다. 첫해에 다소 부대끼던 나무는 키가 커지면서 의외로 잘 자랐다(한 그루는 앞집으로 분양하여 한참 잘 자랐는데 집 주인이 바뀌면서 행방이 묘연해져 버렸다). 나무가 어른 키를 넘으면서 열매도 맺기 시작했다. 걸쭉한 푸른 잎도 특이했지만 초여름 황금색 열매는 이웃들에게 진기한 구경 거리였다.
올해도 비파나무에 황금색 열매가 열렸다. 싱싱한 잎과 품위 있는 나무의 모습도 좋지만 푸른 잎과 어울린 노란 열매는 더 아름답다. 이웃들이 들락거리며 열매를 맛보며 나무를 칭찬이라도 하는 날이면 나무에 대한 아내의 설명이 자못 길어진다.
완도에서 먹었던 열매 맛 느낄 수 없어 아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