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행지의 계단에서조명자
자,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자. 요 위 사진 속에 그 옷, 연 코발트색의 점퍼와 함께 한 세월이 어언 8년 세월이다. 수술을 받고 2년 후였던가? 한쪽 가슴을 절제했으니 인조 유방 없이 얇은 티셔츠나 남방셔츠를 입을 수가 없었다.
요즘은 유방암 수술 환자들 대부분이 유방보존수술을 택하거나 절제할 경우에는 유방재건수술을 해 온전한 가슴을 만들지만, 나는 실리콘 브래지어로 대충 살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실리콘이 너무 무거워 그러잖아도 편한 것만 받치는 나를 질리게 한다는 것이었다.
브래지어를 안 해도 대충 넘어갈 옷. 그때부터 그런 옷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구한 점퍼가 바로 저 옷이다. 티셔츠에 조끼 걸치고 그 위에 펑퍼짐한 저 점퍼를 걸치면 외출준비 땡. 얼마나 좋은지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방풍에 방수까지…. 더구나 색깔도 환한 코발트색이니 더더욱 금상첨화였다. 보기엔 저래도 저 옷이 그 당시엔 상당한 고가로 구입한 '이태리산' 수입 옷이다. 사실 정장도 아닌 점퍼를 비싼 값에 산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았지만 그때 형편에 싸네 비싸네 타박할 처지가 아니었다.
브래지어 없이 찌그러진 가슴을 자연스럽게 감춰 줄 옷. 도심지고 산이고 들이고 어디를 가든지 저 옷 하나면 만사 오케이였다.
한여름이나 한겨울 아니면 저 옷 하나로 버텨 사람들 사이에 저 옷차림이 내 트레이드가 될 정도였으니 10년 가까운 세월, 사진 속의 내 모습은 저 색깔 하나였다. 그렇게 나의 40∼50대를 함께 한 옷. 나의 역사이자 내 분신과 마찬가지였던 옷이 세월의 무게에 무너졌다.
1년 전부터 앞 지퍼 선과 주머니 부근부터 찢기고 너덜너덜해지더니 기어이 쭉쭉 찢어지기 시작했다. 옷 천이 삭았으니 아무리 곱게 꿰매도 한번 빨래만 하면 또 다른 곳이 찢어져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저 옷과 작별을 해야 했다. 너무 아깝고, 너무 서운하고 꼭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 같이 쓰린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