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메추리를 어디에 묻었을까?

딸아이의 메추리를 떠나 보내며

등록 2007.06.13 17:21수정 2007.06.1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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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초등학교 딸 아이가 "아빠, 메추리 키워도 돼?"라고 연신 졸라대듯 물었다. 주말마다 무거운 가방을 끙끙대며 다니는 생명과학학습장에서 메추리 알을 나눠준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미리 바람을 잡는 것이다. 태생적(?)으로 조류를 싫어하는 엄마에게 말하는 것을 미리 포기하고 나를 설득시키는 전략으로 선회한 것이다. 딸의 전략은 결과적으로 주효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난 일요일 오후, 딸아이는 손바닥만한 갈색 상자를 조심스레 들고 집에 왔다. 메추리 알 3개가 들어 있었다. 딸아이는 빨리 옮겨 놓아야 한다면서 미리 준비한 부화기 안으로 메추리 알을 조심스럽게 옮겨 놓았다. 학습장에서 미리 '튜닝'한 상태라 1-2일 안에 부화가 될 것이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부화기 내부 온도를 측정하느라 마룻바닥에 엎드려 눈금을 들여다 보는 모습이 앙증맞아 보였다. 부화기 내부에 뿌옇게 습기가 차야 하는데 제대로 되지 않자 무슨 탈이라도 나지 않을까 연신 조바심을 나타냈다. 나는 '부화기를 자꾸 만지지 말고 그냥 기다려보자'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딸 아이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화기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안내장을 꼼꼼하게 읽어본다.

티격태격 끝에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어디선가 삐악! 삐악!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메추리가 알에서 태어난 것이다. 2마리였다. 작은 공간을 연신 서로 몸을 부딪치며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지른 것이다. 소리에 잠이 깬 딸 아이는 옆에 놓여 있던 라면상자로 빨리 옮겨주기를 재촉했다. 그렇지 않으면 메추리가 병이 나 죽을 수 있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단다.

하지만 옆에 놓인 상자는 바닥에 아무것도 없는 빈 상자였다. 모래도 깔아주고, 백열등도 부화기 것보다 큰 것을 마련해뒀어야 했는데 미처 이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차일피일하다 기회를 놓친 것이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미필적 고의에 가까웠다. 집에 메추리가 날아다니다 혼비백산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추리와의 인연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고운 모래가 아닌 화분 흙을 급조하여 깔아 준 것이 화근이었을까? 그 중 한 마리가 얼마 가지 않아 죽은 것이다. 부화기 속의 전등보다 밝고 큰 전등을 박스에 달아 놓는 등 호들갑을 떨었는데도 역부족이었다. 나머지 한 마리는 그런 대로 잘 지내는 듯했다.


문제는 죽은 메추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손 마디 두 개 정도의 크기였지만 사방천지 아파트로 둘러싸인 곳에서 마땅히 묻어둘 곳을 찾지 못했다. 처는 벌써 어디론가 사라진 지 오래다. 약간의 불편한 마음을 갖고서 휴지에다 돌돌 말고서 물을 내렸다. 순간 기분이 묘했다. 후회가 금세 따라왔다. 약간 걷는 수고를 해서라도 묻어 주는 것이 옳았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가방을 채 벗어 던지자마자 메추리에게로 달려갔다. 한 마리뿐임을 알고 울기를 시작했다. 그리고서는 "아빠, 한 마리는 어떻게 했어?"라고 물었다. 순간 당황한 나는 재빠르게 "아빠가 산에다 묻어줬지"라고 거짓말을 했다. 딸 아이는 "어디에?" 그리고 "그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어?"라고 꼬치꼬치 물었다.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서 화제를 얼른 다른 곳으로 돌렸다. "학교 갔다 오면 손부터 씻어야지."


이 일이 있고 나서 나는 한동안 화장실 물 내리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아 다른 곳을 이용했다. 부화 준비 지식과 장비를 제대로 갖춘 가족을 만났더라면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도 있었을 메추리가 자꾸만 눈에 아른거렸다. 게다가 비인간적으로 뒤처리를 한 나 자신이 싫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딸 아이는 이러한 사실도 모른 채 오늘도 메추리 부근을 떠나지 않고 있다.
#메추리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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