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이 두려우면 유물은 박물관으로 보내세요

경기도박물관, 참여형 박물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등록 2007.06.13 11:23수정 2007.06.1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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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박물관 기증유물실. 기증받은 유물은 약품처리 등의 철저한 관리를 한 뒤 전시한다.
경기도 박물관 기증유물실. 기증받은 유물은 약품처리 등의 철저한 관리를 한 뒤 전시한다.경기도 박물관
"옛날부터 경기도는 서울을 둘러싸고 있어서 경기도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면서 경기도의 정체성을 살리고 경기도민들에게 경기도의 전통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목적에서 경기도박물관이 건립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 용인시에 자리 잡은 경기도박물관에서 만난 김준권 학예연구사는 경기도박물관을 건립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경기도박물관은 1996년에 개관했는데 김 학예연구사는 개관준비를 했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경기도박물관을 지키고 있다.


경기도박물관은 도립박물관 중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열었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경기도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김준권 학예연구사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박물관에는 조선시대 유물이 많다

처음 경기도박물관에 들어섰을 때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잘 가꾸어진 공원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손질이 잘된 잔디며, 잘 자란 나무, 시원한 물줄기를 떨어뜨리고 있는 폭포를 보니 나무 그늘 아래서 쉬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경기도박물관은 연면적 1만153㎡,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이고, 야외전시장과 놀이마당, 팔각정, 원형극장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연간 대략 60만 명이 경기도박물관을 찾는다. 하루 평균 2천명 정도로 알게 모르게 많은 경기도민들이 박물관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기도박물관에는 주로 조선시대의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광주·이천·여주 등지에서는 왕실이나 중앙관청에 도자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도자기 문화가 발달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도자기 문화는 오늘날까지 계승되어 광주·이천·여주에서는 올해 네 번째 세계도자비엔날레가 열렸다.


그뿐만 아니라 경기도는 수도를 둘러싸고 있다는 입지적인 조건 때문에 관리가 되고자 하는 선비들이 서울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곳이었고, 관직에서 물러난 양반 사대부들이 은퇴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터를 잡고 살던 곳이기도 했다. 때문에 양반 사대부와 관련된 기록 자료들이 많이 남아 있다. 문집이나 상훈을 기록한 문서, 관리 임용장을 비롯한 초상화 등이다.

초상화 기증하면 모사본 그려 드려요


경기도 박물관에 전시중인 '심환지' 영정으로 기증받은 대표적인 유물이다.
경기도 박물관에 전시중인 '심환지' 영정으로 기증받은 대표적인 유물이다.경기도박물관
경기도박물관의 소장품 1만1천여 점 중에 조선시대의 유물은 90%에 이른다. 그렇다면 경기도박물관은 유물을 어떻게 확보해서 소장할까? 유물을 구입하거나 기증을 받는다. 경기도박물관의 경우 기증된 유물이 많다고 한다.

"박물관이 소장한 유물 중에 4천여 점은 기증을 받은 것입니다."

김준권 학예연구사는 기증자들이 유물을 집안의 선대 조상이 남긴 물품이기 때문에 팔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히 경기도박물관은 공립박물관이기 때문에 믿고 맡길 수 있기 때문에 보관을 의뢰하거나 기증을 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렇게 믿고 유물을 맡기고 기증하기까지는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기간이 필요하다.

대가 없이 선뜻 기증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최소한의 보상을 바라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기증보상금을 지급하기도 하는데 큰 금액은 아니라는 것이 김 학예연구사의 설명이다. 초상화를 기증하는 경우에는 기증자에게 모사본을 만들어 준다. 모사본이라고 하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여기지만 예상외로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초상화 제작당시의 재질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한 점당 3천만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된다는 것. 김 학예연구사는 초상화를 모사하는 것이 바로 우리 조상들의 초상화 보관법이라고 덧붙였다. 초상화는 200~300년 정도 지나면 탈색이 되고, 낡게 된다.

그러면 초상화를 그대로 모사해서 새로 그린단다. 초상화를 새로 그리면 이전의 초상화는 없애고, 새로 그린 초상화를 보관한다. 초상화가 그냥 조상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 아니라 신성하게 모셔야하는 유품이기 때문에 두 개를 한꺼번에 보관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박물관은 평생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

경기도 박물관 하계 캠프에 참여한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경기도 박물관 하계 캠프에 참여한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경기도박물관
박물관에서 유물 전시만 한다면 그건 오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관람객들의 문화욕구도 다양해졌다. 이제 박물관은 평생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매년 다양한 특별전시와 기획전시를 준비해 박물관을 찾는 이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하는 가족 프로그램은 인기가 높다.

높은 수준의 문화욕구 충족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뮤지엄 아카데미'를 운영하기도 한다. 김준권 학예연구사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거의 전문가 수준이라고 말한다.

경기도박물관에서 일하고 있는 학예연구사는 20명 정도로 고고학, 미술사, 불교문화, 도자기, 회화 등을 전공한 전문가들이다. 학예연구사들은 경기도 내 역사와 유물을 조사, 수집하고 경기도내의 중요 유적 발굴에도 직접 참여한다. 그런 다음에 학술세미나 등을 개최해 연구결과를 알리기도 하고, 자료를 축적하기도 한다.

경기도박물관에서 가장 값나가는 유물은 무엇일까? 값은 얼마나 나갈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김준권 학예연구사는 '헌종가례진하계병'이라고 알려줬다. 헌종의 결혼식 장면을 그린 그림이란다.

경기도박물관에서 전시중인 헌종가례진하계병이다. 궁중화가의 그림으로 보물지정을 앞두고 있다.
경기도박물관에서 전시중인 헌종가례진하계병이다. 궁중화가의 그림으로 보물지정을 앞두고 있다.경기도박물관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보물지정을 앞두고 있는 유물을 돈으로 환산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이런 값비싼 유물의 경우 당연히 보험에 가입해 있다. 보험가액은 자그마치 10억원. 그 이야기를 듣자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들의 값어치가 천문학적인 숫자에 이른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도둑이 노릴 만 하지 않을까?

하지만 도둑이 든 적은 한번도 없다고 김준권 학예연구사는 딱 잡아뗀다. 도난방지시스템이 이중으로 되어 있어 절대로 도둑이 들 수 없다는 것이다.

"도둑이 들었다 하면 경기도 전체가 뒤집어질 겁니다. 큰일이죠."

도둑이 두렵다면 유물은 박물관으로...

김준권 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준권 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사유혜준
김준권 학예연구사는 유물을 기증한 뒤 집안에 도둑이 들었던 기증자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기증자의 집에 든 도둑은 사당을 홀라당 뒤집어 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유물은 이미 경기도박물관에 안전하게 모셔진 뒤. 만일 유물을 기증하지 않았더라면 고스란히 도둑을 맞을 뻔 했다면서 기증자가 감사의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경기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은 1만1천여 점이지만 전시되고 있는 것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전시공간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유물들은 전시하면서 손상이 되거나 마모가 되기 때문에 소장고에서 일정기간 동안 휴식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생산을 하기 보다는 소비를 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도박물관의 2007년 예산은 80억에 이른다. 2006년에는 100억이었으나, 올해는 20억이 줄었다. 자치단체장의 마인드에 따라 예산이 올라가거나 줄어들기도 한단다. 예산 삭감에 따라 유물을 구입하는 예산이 25억에서 15억으로 줄었다고 한다.

박물관이라면 좋은 유물을 많이 소장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지사. 유물을 구입하기 위해 다른 박물관과 본의 아니게 경쟁을 벌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생긴단다. 구입하려는 유물을 다른 박물관에서 가로채가기도 한다는 것. 좋은 유물이 많아야 다양한 전시를 할 수 있고 기획전이나 특별전을 할 때 다른 박물관의 소장품을 빌려오기 쉽다고 한다. 박물관끼리 유물을 빌려오기도 하고 빌려주기도 한단다. 일종의 품앗이라고나 할까.

올해로 개관 11년째를 맞이하는 경기도박물관. 단순한 유물전시에서 벗어나 참여형 박물관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늘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기 위해 로 애쓰고 있는 경기도박물관에 이번 주말에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오는 17일까지 경기도박물관에서는 '금(金), 석(石). 영원한 기억' 기획전이 열린다.
#경기도박물관 #조선시대 #유물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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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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