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비단에 얽힌 백마의 슬픈 사랑이야기

등록 2007.06.13 08:57수정 2007.06.1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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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 있는 선잠단의 대문. 청나라 황실의 후비들이 이곳에서 잠신 즉 비단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베이징에 있는 선잠단의 대문. 청나라 황실의 후비들이 이곳에서 잠신 즉 비단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사진 출처: 위키페디아 백과사전 중국판

오늘날 컴퓨터·통신 분야나 생명공학이 누리고 있는 첨단산업의 위상과 영예를 과거에는 중국의 비단 산업이 누리고 있었다.

전통시대에 최고급 의류의 위상을 차지한 비단을 매개로 중국은 자국 중심의 국제적 질서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과거에 세계 각지의 군주들이 중국 황제에게 머리를 숙이며 무역을 하고자 했던 이유 중 한 가지는 바로 이 비단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툭 하면 중원을 침범한 서북방 유목민족들의 경우에도 그들이 관심을 가진 핵심 대상은 식량보다는 주로 비단이었다. 당나라를 특히 괴롭혔던 돌궐족도 자신들의 말을 갖고 와서 중국의 비단을 교환하기도 했다.

이처럼 비단은 세계 사람들을 중국으로 끌어들이는 데에 기여한 핵심 상품이었다. 비단이 그와 같이 중국을 대표할 만한 상품이기에, 중국에는 비단에 얽힌 전설도 많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마두낭 전설이다. 말의 머리를 한 처녀에 관한 이야기다.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사상가인 순자는 <순자> 잠부편에서 누에의 모습을 "대체로 몸은 여자이고 머리는 말의 머리"라고 묘사했다. 누에의 머리는 말의 머리와 닮았고, 몸은 여자의 신체처럼 유연하고 부드럽다는 뜻에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순자가 처음 한 게 아니었다. 그 이전부터 중국인들은 누에의 모습에서 여자의 몸과 말의 머리를 떠올리고 있었다.

비단에 얽힌 전설


그런 중국인들의 의식을 반영하는 것이 바로 마두낭 전설이다. 중국 비단의 시초를 알려 주는 이 마두낭 전설은 전설적인 삼황오제 중 한 명인 제곡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곡 시대에 촉(지금의 쓰촨) 땅에서 어느 남자가 사람들에게 납치되어 사라졌다. 그가 타고 나갔던 백마 한 마리만 살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그 부인이 매우 슬퍼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남편을 구해 오기면 하면, 내 딸아이를 그에게 시집보낼 텐데."

그 말에 백마의 귀가 번쩍 뜨였다. 하늘을 우러러보며 크게 울부짖은 백마는 곧 고삐를 끊고는 쏜살같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남편 잃은 슬픔에 마음 아파하던 부인으로서는 백마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그다지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며칠이 지났다. 부인은 뜻밖의 광경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어디론가 도망가 버린 줄로만 알았던 백마가 남편을 데리고 돌아온 것이다. 납치 당시 남편과 함께 있었던 백마는 남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 집안에는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부인이 내뱉은 약속을 어떻게든 수습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백마는 자신이 남편을 구해 왔으므로, 그 집 딸은 당연히 자기 부인이 되는 줄로 믿고 있었다. 부인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애초부터 백마는 자신의 주인을 구하러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충성심이 약한 백마였을까?

문제의 장본인인 부인은 자신의 말을 후회했으며, "차라리 딸아이를 아무 데도 시집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어디에 들어갈 때에 다르고 나올 때에 다른 것이다.

부인이 약속을 저버리자 상심에 빠진 백마는 온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그저 하늘만 보고 울부짖을 뿐이었다. 주인에게 배신당해서 우는 울음이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를 얻을 수 없어서 우는 울음이었다. 백마의 슬픔은 점점 극도에 달하고 있었다.

남편을 구해온 백마, 사위로 삼아야 하는데...

그러자 이를 보다 못한 남편이 중대 결심을 내렸다. 말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것은 고맙지만, 그래도 딸을 말에게 보낼 수는 없다고 그는 판단했다. 그래서 남편은 활을 들었다. 그리고는 백마를 겨냥했다. 말은 고꾸라졌고, 주인집 사람들은 백마의 가죽을 벗겨 마당에 널어두었다.

그런데 신비한 일이 생겼다. 죽은 백마의 가죽이 갑자기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그 집 딸을 휘감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딸을 시집보내지 않기 위해 말을 죽였는데, 죽은 말이 딸을 '보쌈'해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집안사람들의 슬픔은 한층 더해졌다.

여러 날 후에 집안사람들은 나뭇가지 위에 걸려있는 딸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녀는 더 이상 산 사람이 아니었다.

말가죽이 딸의 온 몸을 친친 감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도 이미 사람의 머리가 아니었다. 머리는 말의 모양이었다. 백마는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사랑을 이루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더욱 더 신기하게도, 말의 가죽과 딸의 몸이 하나가 된 이 기묘한 몸에서는 실이 뿜어져 나와 스스로를 감싸고 있었다. 누에의 몸에서 실이 나오는 것과 같은 장면이었다.

집안사람들은 그것을 나무에서 내려놓고 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뽕나무 잎을 썰어서 그것에게 먹였다. 그런 다음에 거기서 실을 뽑아 옷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중국 비단의 기원이라고 한다.

인간을 사랑하다가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 백마와, 그 백마가 사랑한 여자의 몸이 결합하여 누에가 되었으며, 그로부터 전통시대 중국의 첨단 상품인 비단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이 마두낭 전설의 핵심이다.

아마 누에의 몸에서 여자의 몸매와 말의 머리를 연상한 사람들이 그런 이미지에 맞게 마두낭 전설을 만들었을 것이다.

사랑 이루루지 못한 백마의 한이 서린 비단자락

한문으로 누에를 '잠(蠶)'이라고 하는데, 잠이라는 글자는 '전(纏)'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전은 '감싸다' '묶다'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백마 가죽이 여자의 몸을 감쌌다고 하는 데에서 그 말이 생긴 것이다.

고대 중국어의 발음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현대 중국어에서 잠은 '찬(can)'으로 발음되고 전은 '찬(chan)'으로 발음되고 있다.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발음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인들이 뽕나무를 '상(桑)'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전설과 관련을 갖고 있다. 죽어 있는 처녀를 보고 '상(喪)심'을 느낀 사람들이 그 나무를 보고 '상'이라고 부른 것이다.

후세의 중국인들은 그 처녀가 인간에게 결국 비단옷을 선사하고 죽었다고 하여 그녀를 '잠신'으로 숭배하고 있으며, 마두낭 혹은 '마두신'으로 추앙하고 있다. 마두낭에 대한 존중은 비단업이 성행한 중국 강남지방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또 베이징 베이하이공원 동북쪽에 있는 선잠단에서는 예전에 청나라 황실의 후비들이 잠신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기사에 실린 사진에서 선잠단의 대문을 볼 수 있다.

고급 의류로 인식되어 전통시대의 왕후장상들이 즐겨 입었던 중국 비단에는 이와 같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못다 이룬 백마의 한과 눈물이 서려 있다. 백마의 한과 눈물이 실이 되어 뿜어져 나왔던 것이다.

이같은 백마와 비단 사이의 전설적인 관계 때문에 훗날 중국에서는 비단을 팔 때에 말을 금기시하는 풍속이 나타났다. 이어지는 글에서 그 이야기를 소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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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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