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브라 벨라탑에서 내려다본 그라나다 시가지 풍경이은비
큰일입니다. 비틀즈의 '어 데이 인 더 라이프'가 나올 즈음 "와우, 이 가게 정말 노래 끝내주네"라며 건배하니 조쉬도 "끝내주지! 저 노래 아는구나!"라고 탁자를 두드리며 좋아라 합니다. 그러더니 이 친구, 급기야 저를 깜짝 놀라게 하는 말을 꺼냅니다.
"이 노래 정말 멋지게 듣는 나만의 방법이 뭔 줄 알아? 마리화나를 태우면서 하늘의 별을 보며 노래를 듣는 거야! 아, 네가 오늘 하루 더 호스텔에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럼 호스텔 옥상으로 올라가서 이 곡을 들으면서 함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마리화나를 태울 텐데. 그럼 진짜 이 곡이 뜻하는 바를 느끼게 될 거야."
아이고. 호스텔 옥상에서 그런 짓도 하는군요. 스페인은 강력한 마약 단속국 중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여행자들이 해방감에 곧잘 마리화나를 피우는 모양입니다.
제가 "한국에서는 마리화나가 불법이야"라고 말하자, 이 친구가 본격적으로 마리화나의 무해함을 설명하려 합니다. 손을 들어 저지하며 "알아, 알아, 담배보다 마리화나가 무해하다는 말을 하려는 거지? 어쨌든 난 해본 적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야"라고 못을 박으니 조쉬가 피식 웃습니다.
"내 생각엔, 너도 한번쯤 해봐야 할 것 같아."
내가 "글쎄"라고 시큰둥하게 대꾸하며 다음 일정을 물었습니다. 조쉬는 오늘 저녁 사크로몬테를 가보겠다고 합니다. 제가 말한 것을 들으니 구미가 당긴 모양입니다. 그리고 20일까지 스페인을 구경하다가 이후 남미로 날아가 중남미를 여행하고 아프리카까지 갈 거라고 합니다.
짐작건대 과연 헤밍웨이 팬답게, 헤밍웨이가 갔던 나라들에 다녀보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헤밍웨이는 이후 신문 특파원이 돼 그리스·터키·스페인 등 유럽 각지를 주유했고 그중에서도 <해는 다시 떠오른다>를 통해 스페인 젊은 남녀 풍속도를 묘사했지요.
헤밍웨이가 스페인의 향락적 젊은이들을 그렸던 것처럼, 이 녀석도 동시대 젊은이들의 일탈과 해방을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던 것일까요. 나름대로 멋진 아이디어이기는 하지만, '아직 인생을 아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당장은, 같은 여행자의 입장에서 오래도록 무전여행을 다니는 이 젊은이가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세비야로 떠날까, 말까?
우리는 '서로 남은 여행 잘하자!'라는 의미로 심기일전해 건배를 했습니다. 정말 이것으로 막잔. 더 이상 마시면 완전히 취할 것 같습니다. 제 혀가 약간 꼬였는지 조쉬가 걱정합니다.
"너 제대로 갈 수 있겠어? 세비야 간다며. 정말 괜찮아? 오늘 꼭 세비야 가야하는 거야?"
이것 참. 일정 정도는 하루 이틀 조정할 수 있는 것이 혼자 여행할 때의 묘미이긴 합니다만, 어쩐지 취기가 오르니 만사 귀찮고 숙소에 돌아가 한숨 자고만 싶은 것이, 꽤 절묘한 타이밍의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와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애초에 여행 떠나기 전, 무슨 일이 있어도 세비야만큼은 꼭 가겠다고 마음먹어 왔으니까요. 저는 힘주어 "절대 걱정하지 마, 아무 문제없어"라고 말하며 자리를 일어났습니다.
비틀즈의 '어 데이 인 어 라이프'의 후렴구 "당신을 취하게 하고 싶어"가 끝없이 흘러나오는 가게를 나서니 조쉬가 버스 역까지 배웅해 주겠답니다. 덕분에 저는 제 무거운 캐리어 가방을 들어주는 친절한 조쉬군의 배웅을 받으며, 적당히 술에 취한 채로 세비야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자, 드디어, 상태는 조금 안 좋지만…. 세비야로 출발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07년 2월 13일부터 일주일간 스페인을 여행한 뒤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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