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틴고릴라가 있는 비룽가 산맥의 콩고 어린이들.김성호
콩고의 역사는 아프리카의 슬픈 역사의 백과사전이다. 유럽 제국주의가 아프리카 국가를 멋대로 분할한 1885년 독일의 베를린 회의는 바로 벨기에의 콩고 점유문제를 다루기 위한 '콩고회의'였다. 콩고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프리카 분할은 20여 년 만에 제국주의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졌다.
유럽의 작은 나라 벨기에의 국왕 레오폴드 2세가 자신의 나라 면적보다 80배나 큰 콩고를 식민지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탐험가인 헨리 스탠리의 콩고 탐사 결과 때문이었다.
레오폴드 2세는 어용탐험가로 전락한 헨리 스탠리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며 콩고를 탐험하도록 한 뒤 1883년 갑자기 콩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학술적 탐험을 가장했던 스탠리의 콩고 탐사는 벨기에 식민지 건설을 위한 정복탐험이었다.
영국과 프랑스를 선두로 독일과 스페인·포르투갈·벨기에 등 유럽 제국주의는 '아프리카는 임자 없는 땅'이라고 우기며 마구 삼켜버렸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아프리카 대륙에서 독립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오직 에티오피아와 라이베리아뿐이었다.
서로 먼저 차지하려다 보니 강이나 산맥, 인종적인 특성에 따른 국경분할이 아니라 지도 위에다 자를 대고 멋대로 자르는 식이었다. 오늘날 아프리카 국경선이 수천㎞ 이상 곧게 뻗은 직선이 많고, 독립 이후에도 인종 간 갈등 등 내전이 끊이지 않는 중요한 원인이다. 제국주의의 엉터리 아프리카 분할이 국민통합과 국가 정체성 확립, 나아가 전체 아프리카 통합의 걸림돌로 지금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식민지국가 중에서도 벨기에의 콩고 통치는 악명을 떨쳤다. 천연고무와 상아 등을 착취하는 데 혈안이 된 벨기에는 자신들의 가혹한 통치에 저항하는 콩고 주민들의 손을 자르고 사형에 처했다. 아프리카 반군들이 "선거에서 다른 후보에게 표를 찍었다"며 주민들의 손을 자르는 것은 벨기에 제국주의에서 배운 버릇이다.
벨기에의 가혹한 통치기간 동안 2000만명이던 콩고의 인구는 900만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1000만명 이상이 죽었으니 가히 인종청소라고 해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