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통을 짊어져? 호미를 들고 살어?

텃밭 가꾸며 잡초와 힘든 씨름을 벌이다

등록 2007.06.08 09:09수정 2007.06.08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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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초제를 치지 않은 건강한 우리 텃밭이다. 만물상이 차려졌다.
제초제를 치지 않은 건강한 우리 텃밭이다. 만물상이 차려졌다.전갑남
예전 아버지는 어둑어둑한 꼭두새벽에 일어나 앞마당을 쓰셨다. 그리고 헛기침을 하셨다. 그러면 식구들 모두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날 수밖에. 조금이라도 꾸물대다가는 "게으른 것은 죄여! 아무짝에도 쓸모없어!"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버릇 때문인가? 나는 동이 트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요즘은 해가 길어져 다섯 시가 조금 넘으면 잠에서 깬다. 벌써 밖이 훤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아내도 잠에서 깬 모양이다.

"당신, 밭에 나가려고?"
"그럼, 나가야지."
"밭에서 살면서도 또 할 일이 남았어요?"
"풀은 매도 매도 끝이 없잖아!"


아내 말마따나 요즘 나는 틈만 나면 밭에서 산다. 고추가 많이 자랐다. 고추 곁순지르기는 지금이 적기이다. 고추말장에 줄을 늘여 붙잡아준다. 토마토, 참외 순도 쳐주고, 오이 덩굴이 제대로 오르도록 줄을 늘여준다. 밭고랑에 자라는 풀은 장난이 아니다. 풀과의 한판 씨름을 하고 있다. 그리고 채마밭에 물주기까지! 하루해가 짧다.

마당에 나왔다. 잔디밭에서 너른 들판을 바라본다. 모를 다 낸 들녘이 금세 푸르러졌다. 유월의 푸름이 철철 흘러넘치는 농촌의 아침, 새벽공기가 신선하다. 가볍게 몸을 풀어본다. 요즘 너무 무리했나? 다리가 뻐근하고, 온몸이 쑤신다.

이른 아침부터 뻐꾸기가 목청을 다듬는다. "뻐꾹뻐꾹" 청아한 목소리가 새벽을 깨운다. 종일 울어대면서도 녀석들은 목이 잠기지도 않나?


풀이 웬수야, 웬수!

무슨 일부터 할까? 호미부터 잡았다. 고구마밭 고랑에 난 풀을 뽑아야겠다. 열흘 전에 한번 긁어줬는데, 삐죽삐죽 풀이 또 수북이 올라왔다. 한 시간 남짓 풀과의 싸움을 벌여야겠다. 세 고랑을 마저 매면 고구마밭은 깨끗해질 것이다.


"선생님, 풀이 웬수지?"

이웃 할머니께서 밭을 매는 나를 보고 인사를 건넨다. 오늘 아침은 나보다 늦으셨다. 할머니 손에도 호미가 들려 있다.

"그나저나 지겹지도 않아?"
"장마 오기 전에 풀을 잡아놔야죠. 지금 잔풀을 못 잡으면 나중 풀한테 지더라고요."
"못 잡기는 뭘 못 잡아! 제초제를 뿌리면 되지!"
"제초제는 왠지…."


질긴 생명력의 잡초는 시도 때도 올라온다. 지겨운 풀이 사람을 이기려한다.
질긴 생명력의 잡초는 시도 때도 올라온다. 지겨운 풀이 사람을 이기려한다.전갑남
할머니도 호미를 들고 밭에서 사신다. 할머니 호미 끝은 둥그러지고, 자루는 반질반질하다. 호미를 늘 가까이 한 흔적이리라. 지금은 원수 같은 풀이 힘이 달린 할머니를 이기려 한다. 할머니 아들이 제초제를 쳐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한다. 얼마나 지겨우면 풀 자라는 게 꼴도 보기 싫다고 하실까?

정말, 풀처럼 질긴 생명력을 가진 것도 없을 것이다. 뽑아도 뽑아도 돌아서면 어느새 새 풀이 돋아난다. 며칠 한눈을 팔면 키 재기를 하듯 무성하게 자란다. 그래 농사는 어찌 보면 풀과의 전쟁을 치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질긴 생명의 풀, 예전엔 자원이었는데

텃밭을 일구는 내 벗. 호미와 괭이이다. 새로 구입한 괭이는 어린 잡초가 난 데를 긁는데 효과적이었다.
텃밭을 일구는 내 벗. 호미와 괭이이다. 새로 구입한 괭이는 어린 잡초가 난 데를 긁는데 효과적이었다.전갑남
나는 요즘 500여 평의 밭을 가꾸면서 풀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힘든 농사이다. 풀을 쉽게 잡을 수 있다면 농사일도 한결 수월할 것이다. 장마 전에 땅을 긁어주면 어느 정도 풀을 잡을 수 있다.

문제는 장마철이다. 연일 비가 내리면 녀석들은 살판이 난다. 풀이 자라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우리 텃밭은 황토진흙이라 장마에는 질어 매기도 어렵다. 장마철을 잘 보내야 할 터인데….

연일 땅을 긁어대는 나를 보고 엊그제는 옆집 아저씨가 보고 물었다.

"전 선생, 제초제는 아예 안칠 작정인가?"
"제초제는 땅을 죽이잖아요."
"물론 그렇지! 그런데 무슨 수로 풀을 이기냐구?"
"하는 데까지 해보지요."


밭매는 일이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다. 제초제를 뿌리면 쉽게 풀을 잡는다. 그리고 여러 날 풀 구경을 안 한다. 힘든 것만 따지면 손으로 김매는 일은 미련한 짓인지도 모른다.

사실, 농촌에서 제초제에 의존하지 않고 농사짓기가 힘들다. 농부들은 제초제 없이 농사짓는 게 가당키나 하냐고 한다. 무슨 수로 풀을 일일이 매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농산물 가격은 턱없이 싸지, 품을 얻어 김까지 매면 이문이 하나도 남지 않는다고 한다.

제초제를 뿌리면 풀을 잡는 데 쉽지만 아무래도 께름칙하다.
제초제를 뿌리면 풀을 잡는 데 쉽지만 아무래도 께름칙하다.전갑남
풀을 매보면 풀의 생리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게으름을 펴 풀이 자란 것을 방치하면 이듬해 농사가 더 힘들다. 풀씨가 땅 속에서 고스란히 남아나온다. 만물이 생동한다는 봄에 풀이 한꺼번에 싹이 나고 말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풀씨가 여러 종류이고, 싹 트는 시기가 각기 다른지라 시도 때도 없이 난다.

풀 중에서 수염뿌리를 가진 놈은 땅이 딱딱하면 잘 뽑히지도 않는다. 잡아당기면 끊어진다. 호미로 긁을 때 뿌리가 뽑히지 않으면 또 자란다. 뽑은 잡초를 그대로 놔두면 비 온 뒤에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그런데 예전에는 풀도 귀한 자원이었다. 일부러 풀을 베다가 두엄자리를 만들고 퇴비를 만들어 썼다. 그리고 논두렁에 나는 풀은 소나 염소 먹이로 쓰이지 않았던가?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사는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요즘 작물을 가꿀 때 상당 부분을 화학비료에 의존한다. 일부러 풀을 베어 퇴비를 만드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가축을 키울 때도 가두어서 편하게 키운다. 대부분 배합사료를 먹이기에 논두렁에 있는 풀도 짐승의 먹이가 되지 않는다.

흙을 사랑하려면 제초제는 안 되지!

풀이 원수가 되어버린 세상! 그러다 보니 제초제라는 농약이 등장했다. 풀을 말려 죽이는 것이다. 제초제가 부족한 농촌 일손에서 필요한 농약인 것은 분명하지만, 사람과 풀이 함께 사는 세상과는 거리가 멀다.

호미로 두어 고랑을 매고 허리를 펴고 있는데, 아내가 밖으로 나왔다. 고구마밭 고랑을 보고 아내가 호들갑이다.

"밭이 깨끗해졌네! 나도 좀 거둘 걸!"
"당신은 아침 준비나 하시지?"
"그나저나 이놈의 풀, 장마철에는 좀 잠잠할까?"
"고구마 줄기가 뻗으면 그땐 풀과 함께 커도 괜찮아!"


깨끗이 김을 맨 우리 고구마밭. 마음까지 개운한 느낌이다.
깨끗이 김을 맨 우리 고구마밭. 마음까지 개운한 느낌이다.전갑남
너저분한 풀밭이 깨끗해졌다. 한결 개운해진 밭을 밟으며 둘러보니 마음도 시원하다. 제초제로 풀을 잡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농약통을 짊어질 것인가? 호미를 들고 살 것인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작물을 가꾸는 게 흙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닌가! 호미를 들고 풀을 잡는 데까지 잡아야겠다.

뻐꾸기 소리가 더 가까이 들린다. 녀석들도 뭣 때문에 꼭두새벽부터 부지런을 떠는 걸까?
#풀 #제초제 #텃밭 #농약통 #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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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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