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초제를 치지 않은 건강한 우리 텃밭이다. 만물상이 차려졌다.전갑남
예전 아버지는 어둑어둑한 꼭두새벽에 일어나 앞마당을 쓰셨다. 그리고 헛기침을 하셨다. 그러면 식구들 모두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날 수밖에. 조금이라도 꾸물대다가는 "게으른 것은 죄여! 아무짝에도 쓸모없어!"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버릇 때문인가? 나는 동이 트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요즘은 해가 길어져 다섯 시가 조금 넘으면 잠에서 깬다. 벌써 밖이 훤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아내도 잠에서 깬 모양이다.
"당신, 밭에 나가려고?"
"그럼, 나가야지."
"밭에서 살면서도 또 할 일이 남았어요?"
"풀은 매도 매도 끝이 없잖아!"
아내 말마따나 요즘 나는 틈만 나면 밭에서 산다. 고추가 많이 자랐다. 고추 곁순지르기는 지금이 적기이다. 고추말장에 줄을 늘여 붙잡아준다. 토마토, 참외 순도 쳐주고, 오이 덩굴이 제대로 오르도록 줄을 늘여준다. 밭고랑에 자라는 풀은 장난이 아니다. 풀과의 한판 씨름을 하고 있다. 그리고 채마밭에 물주기까지! 하루해가 짧다.
마당에 나왔다. 잔디밭에서 너른 들판을 바라본다. 모를 다 낸 들녘이 금세 푸르러졌다. 유월의 푸름이 철철 흘러넘치는 농촌의 아침, 새벽공기가 신선하다. 가볍게 몸을 풀어본다. 요즘 너무 무리했나? 다리가 뻐근하고, 온몸이 쑤신다.
이른 아침부터 뻐꾸기가 목청을 다듬는다. "뻐꾹뻐꾹" 청아한 목소리가 새벽을 깨운다. 종일 울어대면서도 녀석들은 목이 잠기지도 않나?
풀이 웬수야, 웬수!
무슨 일부터 할까? 호미부터 잡았다. 고구마밭 고랑에 난 풀을 뽑아야겠다. 열흘 전에 한번 긁어줬는데, 삐죽삐죽 풀이 또 수북이 올라왔다. 한 시간 남짓 풀과의 싸움을 벌여야겠다. 세 고랑을 마저 매면 고구마밭은 깨끗해질 것이다.
"선생님, 풀이 웬수지?"
이웃 할머니께서 밭을 매는 나를 보고 인사를 건넨다. 오늘 아침은 나보다 늦으셨다. 할머니 손에도 호미가 들려 있다.
"그나저나 지겹지도 않아?"
"장마 오기 전에 풀을 잡아놔야죠. 지금 잔풀을 못 잡으면 나중 풀한테 지더라고요."
"못 잡기는 뭘 못 잡아! 제초제를 뿌리면 되지!"
"제초제는 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