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스웨덴기자 아손, 100년 전 한국을 걷다> 표지도서출판 책과함께
구한말(舊韓末)인 1904년 겨울, 크리스마스 이브날인 12월 24일 부산항에 도착한 스웨덴의 기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아손 그렙스트(W. A;son Grebst). 그 당시 유럽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도쿄에 온 그는 일본이 한반도 취재를 금지하자 영국인 무역상으로 위장하여 우리나라에 밀입국한 후 1905년 초까지 한국을 여행하며 취재, 1912년 스웨덴에서 < I.KOREA >라는 책을 펴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스칸디나비아어과 김상열 교수가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 유학 시절, 이 사실을 대학 구내식당에서 그 도서관의 사서로 일하고 계시던 교포 유재호님에게서 듣게 되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정말로 일생에 한두 번 있을까말까 하는 '우연'한 기회로 이 책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풍물지리서려니 했는데 이건 그런 단순한 책이 아니었다. 그의 조사에 의하면 이 책은 현재까지 세계에서 한권 밖에 없는 귀중한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사실보다는 이 책의 내용이 100년 전의 우리 모습이 사실 그대로 생생하게 살아나와 숨 쉬고 있기에, 과거를 이해함으로서 우리 자신의 참모습을 찾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숙제를 한다는 느낌으로 이 책을 완역하였다고 한다.
완역본의 이름은 <스웨덴의 기자 아손, 100년 전 한국을 걷다>이다. 이 책은 그때까지만 해도 유럽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던 은둔의 나라 조선을 두루 여행하며 장막에 싸인 당시의 우리 생활상을 기자의 시각으로, 기자의 탐구정신으로 절묘하게 그린다. 그는 고종 황제부터 시골의 평범한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으며, 100년 전 한국의 이모저모를 예리한 관찰하고 섬세하게 묘사했다.
우리는 역사적인 사건이나 귀족들의 생활상은 단편적으로나마 문헌을 통해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평민들이나 사회 밑바닥을 이루는 계층들의 삶의 기록은 거의 없기에 그들의 정확한 모습과 일상의 삶은 풍문이나 추억을 더듬어 막연히 추측만 할 뿐이다. 그러나 사실을 세세하게 표현하지 문헌이나 추측은 우리가 편한 대로, 느낌대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어 비슷할 지는 몰라도 실제와는 많은 거리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손은 기자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자는 사명감과 기자의식은 비슷한 듯하다. 기록을 볼 때 그는 보통의 기자가 아니라 기자 정신이 투철한 기자다. 유럽의 북쪽 스웨덴에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 일본으로 오고, 그것도 모자라 세계열강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기에 접어들어 있는, 신변조차도 전혀 보장받을 수 없는 낯설고 물설은 코레아를 용감하게 취재하려 뛰어들었다.
문인들이나 동양의 글과는 달리 그의 글은 기자의 글이라서 상세하고 정확하다. 조기잡이 배 하나를 설명해도 '길이가 21.9m에 너비가 7.3m이고 깊이는 3.7m이다'까지 설명하고 한강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낚시꾼에게 다가가 낚시 얼음구멍을 관찰하며 얼음의 두께는 90cm이고 얼음 아래는 놀라울 정도의 맑은 물이 흐르고 있고 모래와 자갈이 환히 보인다는 것까지 적고 있다.
또한 상세한 기록뿐만 아니라 당시의 생활을 담은 140여장의 사진은 모든 것이 100여 년 전의 과거와는 너무나 달라진 오늘에 와서 지난날의 우리 모습과 사회 풍물을 생생하게 만난다는 것은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부산항에 처음 도착한 소감을 말한다. "우리는 엄청나게 넓은 만에 닻을 내렸는데 이 만 주위에는 까맣고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솟아있고 높고 황량한 갈색의 언덕들이 보초처럼 서 있었다"면서 부산항 사진을 하나 실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부산이고 자주 접하는 곳이 부산항이고 보니 이 모습은 많이 눈에 익은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