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보훈병원 건물 전경.손기영
김씨는 의무병으로 복무한 베트남전 시절의 몇 가지 기억도 꺼냈다.
"당시 우리 부대 안에 있는 포병사단에서 어느 날 갑자기 포신이 폭발해서 10명 정도의 병사들이 다쳤는데, 구조요청을 받고 온 미국의 헬기를 우리부대 안으로 착륙시키지 못했어. 왜냐하면 월맹군의 기습적인 공격이 있을 것이란 첩보가 들어와 불빛으로 헬기착륙을 위한 유도를 하지 못했거든. 다친 사람들을 앞에 두고 정말 발만 동동 굴렀지".
낙후된 의료여건을 가진 베트남 주민들을 위해 수많은 대민의료봉사를 다녀본 것이 파병시절의 보람된 일이었다고 말했다.
"베트남의 의료여건은 60년대 한국의 상황보다 처참했어. 베트남 사람들은 상처가 나도 민간요법에 의존했고 그냥 방치하는 경우도 있어 병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았어. 나는 이들을 성심성의 것 치료해주고 병을 돌보아 주면서 한국군에 대한 현지민의 좋지 않은 감정을 줄여보자고 노력했지."
하지만 전장에서 돌아온 김씨에게 국가는 당연히 받아야 할 전쟁수당 외에 별다른 경제적 지원과 생계대책을 마련해주지 않았다. 전쟁수당 역시 약속한 금액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만 지불됐다.
"연합군의 일원인 한국군에게 미군과 동등한 전쟁수당을 지불해주기로 약속됐는데,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어. 그 때 미군 병장의 수당은 340달러였지만 한국군 병장의 수당은 고작 54달러였어."
보수·진보 떠나 국가유공자 공평하게 대우해야
전쟁의 상처는 그에게 신체적 장애를 가져다주었다. 베트남전에서 오른쪽 무릎 부근에 총상을 입어 지금도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그는 4년 전부터 보훈병원에 나와 신경치료를 받고 있다.
"4~5년 전까지는 전쟁 중에 팔이나 다리를 잃거나 크게 다친 사람들만 보훈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 나처럼 경상자는 보훈혜택을 받지 못해 집에서 시름시름 앓거나 사비를 들여 개인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었어. 지금까지도 특별한 외상이 없거나 합병증이 없는 사람들은 보훈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어."
보훈 혜택의 허실을 지적한 김씨는 남북관계의 개선과 민주화에 따라 변화한 진보적 사회분위기가 오히려 참전용사들에게는 소외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요즘 국가의 민주화를 위해 싸운 사람들에 대한 보상대책들이 사회적인 관심 속에 추진되고 있는데, 역시 필요한 일이지만 대한민국의 일등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참전용사에 대한 보상대책 역시 중요한 문제야.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베트남 파병의 사회적 평가를 떠나서 참전용사 개개인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하는데…."
진보진영에서는 참전용사들을 독재정권의 유지를 위한 '반공주의'의 피해자로 보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왼편에 서서 민주화를 위해 싸워 이뤄낸 사람들이나 사회의 오른편에 서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사람 모두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한 국가 유공자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모든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이기에 그들에 대한 평가는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더라도 공평하게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