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집의 향기, 나무>겉그림들녘
2006년 4월 4일 천연 기념물(천연기념물 제470호)로 지정된 화성 전곡리의 물푸레나무는 수령 350여년 추정의 노거수이다. 이 나무는 높이 약 20m, 가슴높이 줄기둘레 4.68m로, 물푸레나무로는 보기 드물게 크고 아름답게 자랐다.
물푸레나무는 크게 자라는 활엽수로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다. 하지만 화성 전곡리의 나무처럼 아름답고 크게 자라기란 힘들다.
목재의 재질이 단단하여 괭이자루 등 각종 농기구나 생활 용품 등을 만드는데 워낙 유용하게 쓰여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무껍질은 건위제나 소염제 등의 한방 재료로 사용한다. 때문에 노거수로 자랄 수 있는 세월이 모자란다.
화성 전곡리 물푸레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전에 유일했던 천연기념물 물푸레나무는 파주 적성면의 수령 150년짜리. 이보다 훨씬 크게 자란 나무가 화성의 물푸레나무다.
화성 전곡리의 이 물푸레나무는 6.25이전까지 마을 주민들의 신앙적 대상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나무에 의지하여 가뭄이 들면 단비를 기다리며 기우제를 지냈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당굿)를 지냈다. 뭇사람들의 억울한 하소연인들 듣지 않았으랴.
화성 전곡리의 물푸레나무는 사람들과 슬픔과 기쁨을 함께 한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무가 영영 묻힐 뻔했다. 이런 나무를 일아 본 사람은 고규홍씨. 어떤 단체가 아닌 개인이 신청하여 천연기념물이 된 유일무이한 경우다.
<옛집의 향기, 나무>는 화성 전곡리의 물푸레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게 한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의 신간이다. <이 땅의 큰 나무>, <절집나무>, <알면서도 모르는 나무 이야기>로 이미 국내 노거수에 관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걸로 인정받은 저자가 사람들의 사연을 품고 있는 노거수 23그루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시조작가로 시조의 현대적 부활을 위한 신운동과 고전 발굴 연구에 힘썼던 국문학자 이병기. 민족의 말과 글을 보존하기 위한 청소년 교육에 힘쓰다가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투옥(1942년)되었던 가람 이병기.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선생의 생가 앞마당에는 탱자나무 한그루가 정원수로 꼿꼿하게 서 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조국의 얼을 지키기 위해 타향 멀리에서 생활해야 했던 선생은 항상 고향을 그리워했다. 선생이 이승에서의 삶을 마치는 순간까지 지켜보았을 저 한그루의 탱자나무. 이 집의 탱자나무만큼 곧게 서 있는 탱자나무를 아직 본적이 없다. 결코 곧게 자라는 나무가 아닌데, 어쩌면 이렇게 올곧게 자랐을까? 나무도 키우는 사람의 색깔과 분위기를 따르는 것일까. 갖은 협박과 압제에도 굴하지 않았던 선생의 이미지를 그대로 빼어 닮았다. 오래된 옛집에서 겉은 사뭇 온유해 보이지만 서릿발 같은 가시를 세운 아주 특별한 탱자나무 한그루를 만난다.-이병기 생가의 노거수 탱자나무 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