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범죄에 '공소시효' 면죄부는 안된다

[주장]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

등록 2007.06.04 18:26수정 2007.06.04 18:26
0
원고료로 응원
반인권적 국가범죄. 생경한 용어이다. 나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권이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개념만 가지고 있었을 뿐, 우리 사회에서 반인권적인 사건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한 그 피해자들은 얼마나 가혹한 고통을 겪고 있는 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되었던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피해 사례들은 나에게는 너무도 엄청난 충격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던 석달윤씨는 수사관들에 의해 물고문으로 먹은 물을 빼낸다며 거꾸로 매달아 배를 짓밟는 고문을 당했고, 볼펜심을 성기 요도에 찔러 넣는 짓까지 당했다고 한다.

"너 하나 죽어도 진단서 하나면 된다"고 말하는 그들 앞에서 '죽어나가는 것보다 살아서 가족을 봐야한다'고 생각한 그가 허위자백을 하고 간첩이 된 것은 불가항력이 아니었을까.

남매가 간첩으로 몰렸던 사건의 피해자들 역시 샤워를 하던 중 수사관이 성기에 칫솔을 대며 "어떤 게 더 큰지 한번 대보자"는 수모를 당하는 등 무수히 많은 조작간첩사건 피해사례들의 가혹함은 듣는 나의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들에게 더 가혹한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간첩이 된 그들을 이웃들은 외면했고, 자식들은 '빨갱이 새끼'라는 오명에 시달렸다. "나오고 나서는 교도소에 있는 게 더 낫다고 했어요, 형사들이 얼마나 쫓아다니는지 어딜가면 간다고 하고 갔다오면 갔다왔다 해야 하고"라고 말하는 이재두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반인권적 국가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은 과연 어디까지여야 하는지, 기가 막히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심정을 억누를 길이 없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말 그대로 대명천지에 어떻게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이러한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나를 더욱 치떨리게 했던 것은 이토록 처절한 범죄의 주체가 다름 아닌 국민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국가라는 사실이었다.

법의 ㅂ자도 모르던 내가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2005년 9월 이원영 의원 외 145인 발의)에 관심을 갖고 그 제정을 위한 활동에 뛰어들게 됐던 것은 바로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피해자들이 더 이상 양산되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이들의 처절한 절규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들을 버려두고 있는 국가 시스템의 완고한 보수성과, 공소시효라는 면죄부를 앞세워 책임을 면하고 오히려 호의호식하고 있는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 역시 나에게 공소시효배제특별법의 제정의 절박성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은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음으로써 더 이상의 국가범죄의 재발을 막고, 시간이 흐른 후에도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피해구제의 길을 열어놓기 위한 법률이다.


국가권력의 성격이 바뀌기 전까지는 피해를 호소할 길마저 막힐 수밖에 없는 국가범죄의 성격상, 이에 대한 공소시효를 배제하고 피해구제를 가능케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며, 지난 시기 가해자들을 들춰내어 처벌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미래의 국가범죄의 발생만은 막자는 취지의 법률 제정에 장애가 될 만한 요인이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은 발의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공청회 한 번 열린 적이 없었다. 국회의원들을 만나 호소하고, 1인시위, 토론회를 진행하는 등 수많은 이들의 각고의 노력이 있었으니 이번 6월 임시 국회 때는 어쩌면 이 법안이 상정되는 것을 보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걸어본다. 더 이상 공소시효배제특별법의 제정이 형식적인 법논쟁과 정쟁 다툼에 휘말려 늦춰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 땅의 민주화를 앞당겼던 87년 6월 항쟁 20주년이 다가오고 있는 오늘, 그러나 여전히 반인권 국가범죄 피해자들은 피눈물 속에 절규한다. 다시 한 번 묻는다. 17대 국회는 왜 공소시효배제특별법의 제정을 미루고 있는가. 특별법의 제정 없이 17대 국회가 과연 역사적 책무를 다 했노라고 자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마지막으로 아람회 조직사건 피해자들의 당부에 귀기울일 것을 법 제정 관계자들에게 간곡히 부탁하며 부족한 글을 맺도록 하겠다.

"우리가 그때 당한 일은 차마 인간이 인간에게 하지 못할 짓이었다. 더 이상 우리와 같은 공권력에 의한 무고한 피해자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고문조작 가담자들을 엄정하게 단죄함으로서 반인권적 국가범죄에는 시효가 있을 수 없음을 보여줘야 한다" -5·18아람동지회 기자회견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통일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통일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공소시효 #국가범죄 #인권 #조작사건 #소멸시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3. 3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4.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5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