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석봉에만 서면 마음이 느긋... 빨리 나무들이 자라서 예전처럼 울울창창해지길...정명희
언니는 그래도 무리라며 우겼지만 나는 계속 등산 연령으로 봤을 때 언니는 오십 아닌 40대라 주장했다. 내 말을 증명해주듯 언니는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벌써 11시간의 고행은 다 잊어버린 듯 정말 흐뭇하고, 시원한 산행이었다며 만족해했다.
이튿날은 자고 나니 더 뿌듯하다며, 근육통을 걱정했는데 그런 것도 전혀 없다며 혈기왕성한 목소리로 전해 왔다. 그 목소리는 내 주머니에 10만 원(?) 확실하게 굴러들어오는 영상과 겹쳐졌다. 뿐만 아니라 다음번엔 언니 먼저 지리산 가자고 나를 꼬드길 일이 눈에 선했다.
마무리 보너스...
이번 지리산 산행에서 가장 괄목하고 상대하게 만든 존재는 다름 아닌 파리였다. 아니 파리 떼였다. 웬 '놈'의 파리가 그렇게 많은지. 얼마나 기름지게 잘 먹었으면 이건 숫제 파리가 아니라 잠자리 수준으로 날아다녔다. 로터리, 장터목산장의 절반은 파리들의 군무(?)와 그들을 키워낸 화장실 냄새로 코를 싸쥐게 만들었다.
우리가 쏟고 가는 오물을 완전히 자연적으로 처리하려 하기에 그렇다는데, 아유, 그럴 거면 화장실을 좀 멀리 산장과 떨어지게 지어놓고 그러시지. 세석산장은 그나마 화장실이 좀 떨어져 있어서 덜했는데…. 하여간 그것은 너무도 강렬한 '체험 삶의 현장'이었다.
또 하나는 반달곰을 주의하라는 안내판이었다. 처음엔 무심코 지나쳤는데 장터목과 세석평전 사이의 어느 길목에서 반달곰을 마주쳤을 때의 대피요령을 읽으니 등골이 오싹했다. 즉 곰을 만나면 뒤돌아 가지 말고 조용히 뒷걸음질을 해서 피하고 곰이 달려들면 적극 저항하라고 하였는데 적극 저항한다고 사람이 곰을 이길까. 아주 난감한 안내판이었다. 가스총이나 고춧가루를 휴대하라고 했으면 또 모르겠으나.(웃음)
아, 그리고 무엇보다 군침을 흘리면서 산나물을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국립공원에서 산나물 체취 금지령이 내려서 그런지 취나물, 곰치 등이 노다지로 보였다. 자연을 많이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그냥 좀 뜯어먹게 내버려두시지. 나물들의 일생에서 봐도 인간들의 뱃속으로 들어가 영양이 되어주는 게 보람 있지 그냥 늙어 죽는다는 것은 왠지 허무할 것 같은데. 나물들이 말을 않으니, 우린 법을 따를밖에(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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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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