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22일 오후 세종로 정부합동청사 브리핑실에서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설명하는 가운데 수십 명의 기자들이 국정홍보처의 발표를 기록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침묵과 협조로 언론독재 지탱하는 지식인, 실망스럽습니다
반면에 정치권은 왜 사안을 파악하기도 전에 일제히 언론의 편을 들까요? 언론에게 찍히면 죽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바야흐로 제왕적 대통령의 시대는 가고 우리는 이미 언론독재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정치독재의 유지가 지식인의 침묵과 협조 아래 이루어졌듯이, 아이러니하게도 언론독재 역시 지식인의 침묵과 협조 하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정치독재에 대해서는 내부자가 양심선언이라도 했고 일부 언론인이 항거했지만, 언론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서는 최소한의 다른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침묵의 카르텔이 너무도 견고하여 두려울 따름입니다. 최 교수님도 바로 수구언론의 피해자였지만 결국은 그 언론과 타협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국민의 다수가 청와대보다 언론이 더 힘이 세다고 믿는 것입니다.
언론자유를 위해 반독재운동을 했던 시민단체가 아직도 20년 전의 패러다임에 갇혀 정부 조치에 반대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합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어느 사회에나 관성의 법칙이 존재하니 문화적 지체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의 민주발전지수가 꾸준히 상승해 왔지만 제도와 실행 면은 73.25점인데 비해 태도, 의식 부문은 40.25로 나타난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문화적 지체현상에 가장 많이 기여한 사람들이 아마도 언론인, 정치인, 지식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난 20년 동안, 아니 4년 전과 비교해도 한국 사회는 참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프리덤하우스의 자유화 지수를 살펴보면 20년 전 5등급이었던 것이 지금은 1.5등급, 정치자유지수는 1등급입니다. 2002년 아시아에서 정치만족도가 꼴등이었던 한국 국민의 2006년 민주주의 만족도는 75%로 1등입니다.
최 교수님처럼 한 발 앞서 미래를 내다봐야 할 분이 20년 전의 패러다임으로 2007년의 한국을 설명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도넬의 위임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는 1980년대 남미와 한국 등 자유선거만을 겨우 갖춘 나라에서 대통령의 권력이 의회나 사법부에 의해 견제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남용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언론이 노 대통령을 두려워하지 않고 온갖 저주를 퍼붓는 이유는 노 대통령이 절차적 정당성 없이 언론의 목을 죄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과거 독재정부처럼 긴급조치를 남용하고, 언론사를 통폐합하고, 국정원에 시켜서 도청하고 미행하고, 국세청에 시켜 세무조사를 한다면 지금처럼 무제한의 언론자유를 남용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을 존중했고, 국회의 반대에 밀려 정당한 이유도 없이 헌법재판소장 임명을 철회했으며, 야당과 타협하느라 부동산관련 법을 만드는 데 수년이 걸렸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아직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한미FTA는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고 체결됐고 국회를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민주국가에서 개혁을 하다 보면 갈등이 있는 것은 당연하며, 여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대통령은 후퇴하기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참여정부가 위임민주주의라는 경험적 증거로 최 교수님은 이번 사안을 언급하셨습니다. 사안의 특수성상 폭넓은 여론 수렴은 못했지만, 국회의 기자실을 없애야 하는 것도 아닌데 이 사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합니까? 게다가 지금도 여론수렴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헌법재판소 좋아하는 야당이나 언론단체는 얼마든지 위헌소송을 통해 민주적 절차에 따라 문제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할 길이 열려 있습니다.
노 대통령의 언론관은 언론을 권력의 4부 중 하나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미국이나 우리의 민주주의가 3권분립의 정신에 기초했듯이, 언론도 견제돼야 할 권력의 하나로 간주해 자유와 함께 책임도 지라는 것입니다. 한 원로 언론학자는 언론권력을 견제할 주체는 정치권밖에 없다며 언론견제를 위해 정치권의 자정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정부가 꿀릴 것이 없으니 언론 정화를 위해 나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노 대통령이 언론의 비판을 거부하거나 싫어한 적이 있습니까? 저는 노 대통령을 가장 괴롭혔던 참모였을 만큼 싫은 소리와 반대의견을 많이 냈지만 아직도 노 대통령이 아끼는 참모라고 생각합니다. 노 대통령은 오히려 반대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높이 삽니다. 노 대통령이 거부하는 것은 언론의 비판이 아니라 거짓말과 속임수입니다.
이젠 약자가 아닌 언론, 엄살과 응석은 통하지 않습니다
한국 언론의 담합은 대통령의 말씀 때문이 아니라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 담합의 사례는 이번 조치와 관련한 언론보도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국민일보>를 시작으로 <중앙일보>가 추가 인터뷰를 덧붙였을 뿐 <서울신문>, <동아일보>까지 똑같은 내용으로 이번 조치에 관한 미국 아메리칸 대학 베네디토 교수의 발언을 실었습니다.
프레스룸을 '상주기자실'로 오역한 것도 문제지만, 이들은 "대다수 공공기관에서 기자들은 자유롭게 건물 내부를 돌아다닐 수 있으며, 안면이 있는 관료들과는 그의 사무실에서 편하게 만나곤 한다"며 마치 미국에서는 사무실 무단출입이나 선약 없는 인터뷰가 가능한 것처럼 보도했습니다.
베네디토 교수에게 확인한 결과 미국에서도 공무원과 사전 약속 없이 사무실을 방문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건물 돌아다니는 걸 누가 막겠습니까. 사전 약속 없는 사무실 무단출입을 금지할 뿐입니다. 이러한 보도는 명백한 속임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