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미디어 부문도 퍼줬다"

양문석 박사, 경기민언련 초청 언론강좌서 문제점 지적

등록 2007.05.30 20:39수정 2007.05.30 20:40
0
원고료로 응원
지난 25일 정부의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협정문 공개 이후 졸속협상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미디어분야에 대한 협상결과에 대해서도 불만과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상임대표 장문하·이하 경기민언련)이 29일 저녁 시민단체 관계자와 회원들을 위해 마련한 언론강좌에서는 한미FTA 협상과 관련해 미디어분야의 피해와 문제점 등이 집중 거론돼 관심을 끌었다.

이날 특별강사로 초청된 이는 '한미FTA 시청각미디어분야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양문석 박사(언론학·언론개혁실천연대 정책실장). 그는 '한미FTA 타결에 따른 시청각미디어분야의 문제와 대안'이란 주제의 강연을 통해 미디어분야의 협상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양 박사는 "한미FTA가 국내 미디어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심각한 수준"이라며 "결국 정부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미디어분야도 퍼주기 협상을 했다"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특히 ▲ 외국인 PP(프로그램 공급사업자) 투자 100%허용 ▲ 편성쿼터 축소 ▲ 방송 광고시장 개방 ▲ 주파수 경매제 도입 등으로 인해 국내 방송시장의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또 CNN 등 외국방송 재송신 채널의 한국어 더빙과 광고허용 문제는 유보됐으나 국내 방송법의 금지조항 미비로 여전히 불씨가 살아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외국인 PP 투자 100% 허용, 국내 군소 업체 고사 당한다"

양 박사는 "현행 방송법상 일반 PP(보도, 종합편성 제외)의 경우 외국인 직접 투자 지분은 49%로 제한하고 있으나 이번 협상에서는 직접투지 제한은 유지하되, 간접투자를 100%까지 허용했다"라며 "이는 사실상 외국인 투자를 100% 개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미국의 미디어그룹이 한국에 100% 지분을 투자해 법인을 세운 뒤 국내 PP 지분을 100% 사들여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양 박사의 지적이다.

이렇게 될 경우 국내 대부분의 PP들은 고사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거대 미디어그룹이 국내 케이블TV와 위성방송에서 소유·경영·편성권을 쥐고 채널을 운용하게 되면 군소 PP들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또한 미국의 PP들이 등장해 국내의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를 고액의 런칭비로 설득 장악할 경우 국내 PP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미국 PP들이 차지할 가능성도 높다고 양 박사는 주장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오면 한국산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PP가 줄어드는 대신 미국프로그램을 수입하는 양이 많아져 독과점시장이 형성되는 한편 미국의 프로그램 유통회사들은 지금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양 박사는 "미국의 거대 미디어그룹 자회사들이 대거 상륙해 국내 PP시장을 평정하면 국내 SO는 고액의 런칭비는 고사하고 오히려 고액의 컨텐츠 비용을 미국 PP들에게 지불하는 관계 역전현상이 빚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SO들이 고액의 컨텐츠 비용을 미국 PP에게 지불하고, 그 부담을 시청자들에게 전가하면 지금의 케이블TV 시청료는 지금보다 최고 10배 이상 폭등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중소 PP들은 망하고 SO의 주가는 떨어지며, 시청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고액의 시청료를 내고 TV를 보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양 박사는 이어 국산 프로그램 의무편성 비율 축소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번 협상에서는 영화의 경우 현행 25%에서 20%로, 애니메이션은 35%에서 30%로 낮췄다. 이는 케이블이나 위성방송에 팔 수 있는 영화 편수가 줄어든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양 박사는 "한국영화는 인터넷 영향으로 인한 비디오 시장 침몰과 스크린쿼터 축소에 이어 방송쿼터 축소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됐다"며 "전체 한국영화 시장을 고려한다면 단순한 5%의 쿼터축소 의미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양 박사는 정부가 이번 협상에서 특정 국가의 프로그램 편성비율을 60%에서 80%로 늘려주는데 합의한 것도 국가와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사실상 무력화시켰다고 비판했다.

광고시장도 열어 KOBACO 해체 위기...군소 지상파 방송 치명적

양 박사는 또 다른 문제점으로 이번 협상에서 정부측이 양허안 유보리스트에 올리지 않아 광고시장이 완전히 열리게 되면서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 이하 코바코)가 해체될 운명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코바코는 그동안 지상파 방송과 광고주간의 직거래방지를 통한 부조리(비판기사 빼기 등) 억제와 광고요금 조절, 광고의무 할당제 등을 통해 방송사들의 균형발전을 유도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한미FTA 타결로 방송광고 시장이 완전 개방되고, 코바코 해체와 미국의 미디어렙 도입이라는 등식이 성립돼 버렸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한미FTA 협정문에 들어있는 외국인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한 '내국민 대우'와 '최혜국 대우' 조항을 근거로 미국의 미디어렙사가 한국에서 지상파 광고영업을 대행하겠다고 나서면 정부는 코바코 해체와 다수 미디어렙 도입을 위한 국내법 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게 양 박사의 주장이다.

이럴 경우 지상파 방송시장은 단기적으로 KBS2, MBC, SBS를 제외하고 복구할 수 없을 정도의 치명상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양 박사는 특히 지상파 라디오와 지역방송사 등 인력과 재원, 제작환경이 열악한 군소 방송사들의 타격이 클 것으로 분석했다.

또 지금까지 국내 PP들과 지상파 방송들은 국민의 정서와 문화를 반영하는 틀 속에서 경쟁해 왔으나 미국PP로 인해 국내 PP들이 퇴출되면 현재 지상파 광고시장의 상당부분이 케이블 등 유료방송시장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양 박사는 "정부가 통신주권의 상징인 주파수시장마저 개방해 외국인의 한국방송시장 진입을 위한 우회로를 만들어준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한미FTA 협상에서 미국 측이 요구해온 주파수 경매제에 합의해줌에 따라 내·외국인은 차별 없이 주파수 경매제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주파수 경매제 합의...지상파 방송 미국에 통째로 내주는 꼴"

주파수 경매제란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개인이나 법인에게 주파수를 배정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미국인이나 미국 법인이 높은 가격을 제시하면 한국의 주파수를 살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양 박사는 "정부는 주파수 경매제를 도입할 경우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거치겠다고 밝혀왔으나 이를 뒤집었다"면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주파수 경매제는 지상파 방송을 미국이나 미국법인에게 통째로 내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통부가 그동안 밝혀온 대로 아날로그 TV 종료 이후 생기는 여유 주파수를 환수한 뒤 경매제를 통해 미국 법인 등에 넘길 경우 미국은 경매로 산 주파수를 한국 사업자에게 임대할 수 있고, 지상파방송에 준하는 융합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양 박사는 미국이 지상파 방송 서비스 시장의 개방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배경이 바로 이런 이유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지상파방송 서비스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줬기 때문에 굳이 지상파 방송 소유지분이나 쿼터축소 등을 협상에서 무리하게 관철시킬 필요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양 박사는 이 같은 문제점들과 관련해 "자유무역협정의 탈을 쓴 '무조건 무제한 무역협정'은 반대한다"면서 "협상을 다시 시작해야 하며, 적어도 100을 주면 90은 얻어내는 공정무역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시청각미디어분야는 문화영역으로, 교역의 대상이 아니라 교류의 대상"이라며 "이 정신을 벗어나는 그 어떤 협정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양 박사는 한미FTA 시청각미디어분야의 합의문을 영화 '괴물'에 비유하면서 "1차적으로 한미FTA 비준 저지라는 '괴물을 잡는 방법론'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며 "비준 반대를 위해 국회를 설득하는 싸움에 돌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FTA #방송시장 #주파수 경매제 #한국방송광고공사 #지상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수원을 비롯해 경기지역 뉴스를 취재합니다. 제보 환영.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3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4. 4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5. 5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