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해록>, <동방견문록>을 넘다

[서평] 김성미의 <동방의 마르코 폴로 최부>

등록 2007.05.30 08:23수정 2007.05.30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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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유명하다. 유럽인들의 동방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해서 '신대륙 개척'이란 명목으로 침략의 깃발을 들게 하는데 일조한 책으로 알려지고 있다. 근대를 먼저 연 유럽 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동방견문록>은 꽤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들의 시각이 담긴 세계사를 배우고 자란 우리들에게도 <동방견문록>은 낯설지 않다.

조선시대 최부가 쓴 <표해록>이란 책이 있다. 500년 전에 제주를 떠난 뒤 표류되어 중국 강남에 상륙한 뒤 다섯 달 동안 있었던 일을 기록한 <표해록>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일본 승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와 더불어 외국인이 쓴 중국 3대 기행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르코 폴로가 구술했다고 전해지는 <동방견문록>이 동방을 과대 포장하기도 했지만, <표해록>은 당대 중국의 사실을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에서는 <동방견문록>보다 <표해록>을 더 귀중한 기록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귀에 <표해록>은 낯설기만 하다.

43인의 숨 막히는 표류 일지

최부 일행이 제주를 떠날 때 날씨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무리하면서까지 제주를 떠난 건 최부가 부친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고향인 나주에 가서 부친상을 치러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출항 결정을 내린 것이다. 무리한 출항은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제주를 떠난 지 얼마 후 배는 세찬 비바람과 파도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요동을 쳤다. 배가 하늘 높이 치솟다 떨어지고 좌우로 흔들리기를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사방팔방 정신없이 구르고 부딪치고 휘둘렸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토악질과 고통에 시달렸다.

비에 젖은 몸으로 뼛속까지 얼어버릴 것 같은 추위 속에 사시나무처럼 떨며 밤을 지새웠다. 그 고통이 너무 심해 목을 매 죽으려는 사람도 생겼다. 옆에 있던 사람이 가까스로 목에 맨 끈을 풀어 자살을 막았다. 비바람 파도 속에서 배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물을 필사적으로 퍼내며 가까스로 배의 난파를 막았다. 절망에 빠진 이들이 용왕의 노여움을 달랜다며 배 위의 옷가지며 식량을 바다에 던져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닿은 중국 땅 강남에서 처음 만난 게 도적이었다. 가진 재물 모두 빼앗기고 발가벗겨진 채 작두 앞에서 목이 잘릴 위기를 맞기도 했다. 도적들의 소굴을 벗어나는 게 살아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 최부는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일행을 이끌고 고개를 넘고 산을 넘어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서도 최부 일행의 위험은 계속되었다. 왜구나 도적으로 오인되어 처형될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때마다 최부는 필담을 통해 자신이 조선의 관리라는 것을 밝히고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요구했다.


최부의 진심이 관리에게 전해져서 일행은 북경으로 향하게 된다. 그 긴 여정 내내 그들을 향한 중국인들의 의심은 계속되었다. 북경에 도착한 후 한 달이 지나도록 그들은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부친상을 당해 급한 심정을 호소하며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간청을 계속하는 방법 외엔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최부 일행이 명나라 황제를 만나 사은의 예를 올리고 귀국한 건 표류한 지 여섯 달이 지난 뒤였다. 요동을 지나 배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 의주에 이르니 의주성의 군관이 나와 일행을 환영했다.

중국도 인정하는 <표해록>의 가치

<표해록>은 중국 명대의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최부 일행이 강남에 상륙하여 북경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간 여정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당시 중국의 제도, 해안 방비, 도시와 농촌의 경제, 도로 교통, 민속, 중국과 조선의 관계 등을 연구하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표해록>의 귀중한 가치를 국내 어린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동방의 마르코 폴로 최부>란 이름으로 책이 출간되었다. <동방견문록>에 비해 낯설지만, 그 이상의 자료로 평가되고 있는 <표해록>의 가치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동방의 마르코 폴로, 최부

김성미 지음, 최용호 그림,
푸른숲주니어, 2007


#최부 #동방의 마르코 폴로 #표해록 #동방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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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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