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씨의 작품 중 하나. '묘법'전시회 특성상 별도의 설명이 없다.이준혁
그의 두툼한 손에 끼어 있는 커다란 알반지, 마치 피카소를 닮은 헤어스타일, 자신의 철학과 작품을 열정적으로 소개하는 카리스마, 좌중을 둘러보는 부리부리한 눈썰미 등 박서보 화백을 설명할 수 있는 트레이드마크는 정말 많다.
하지만 그를 소개할 때 '묘법'을 빼 놓고는 그의 작품과 그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작품인생에 있어 '묘법'은 그의 화력의 주된 축이자 그를 표현하는 상징어이다.
1950년에 홍익대 동양화과에 입학하여 청전 이상범 선생이나 고암 이응노 선생 등에게 미술을 배우던 그는 6·25 동란으로 인해 스승과 재회하지 못하게 되면서 서양화를 시작하게 되었고 스승과의 어쩔 수 없었던 이별의 순간을 자신의 화풍을 국제화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며 발전한다.
60년대에는 추상화(앵포르멜)를, 70년대에는 탈이미지적 작품을 다진 후, 80년대 이후로는 70년대에 조금씩 시작하여 지금까지 37년간 꾸준히 창조적 진화를 거듭한 묘법(Ecriture, 에크리튀르)에 작품활동의 대부분을 매달리다시피 했다.
한국어로 쉽게 풀어보면 '쓰기'(Writing)에 가까운 묘법은 작가의 잠재된 마음과 무의식적 세계를 쓰고 지우고 또 쓰고 또 지우는 형태의 화법으로서 상당히 인고의 노력이 요구되는 고된 작업이다.
정교하게 드로잉을 한 후 오랜 시간 물에 담가둔 한지 수 겹을 캠버스에 올린 다음 한지를 풀어 물감에 갠 것을 화폭에 올리며 굵은 4B연필이나 자 등으로 100번 이상 계속 그어내리고 밀어내 밭고랑처럼 요철을 만들고 한지가 굳어지기를 기다려 틀을 잡아 색을 입히는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한 작품 창조의 과정은 자신을 비우며 참선의 경지에 도달하는 고행과 같은 어려움이다.
그러기에 그는 스스로 자신의 최고 적은 바로 '자기만족'이라 말한다. 그는 매일 14시간동안 예술이 아닌 예도를 수행한 것이다.
테마 2 - 꾸준히 진화해 나가는 묘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