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적인 공간으로 변질된 인사동의 안타까운 현실

인사동 이야기

등록 2007.05.28 20:25수정 2007.05.28 20:25
0
원고료로 응원
인사동 풍경
인사동 풍경김영태
인사동은 북촌과 종로 사이에 위치하여 주로 중인들이 살았던 주거지역이다. 조선 초기 이래로 조선 미술활동의 중심지로 형성되었다.

현재의 인사동 명칭은 일제 통치시기인 1914년부터 불렸다. 그 후 1930년대부터 인사동길 주변에 서적 및 고미술 관련 상가가 들어서기 시작해 골동품 거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70년대에 최초의 근대적 상업화랑인 현대화랑이 들어서면서 상설 전시판매장 형식의 화랑들이 모여들었고, 미술문화의 거리 성격이 강화되었다. 그리고 1980년 이후에 골동품, 고미술, 화랑, 고가구점, 화방, 민속공예품 판매점포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서울의 명실상부한 전통문화예술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인사동은 1970년대 이후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드나들면서 그들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도 많이 전해지고 있고, 문화예술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현재는 많은 신인 예술가들이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첫 개인전을 여는 데뷔무대로 삼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문화예술의 거리라는 명성과는 차츰 멀어지고 있다.

인사동은 언론매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주말마다 많은 외국관광객들과 시민들이 이곳을 찾아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전통문화나 동시대 문화예술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고 먹고 마시는 소비적인 공간은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이곳을 아끼고 있는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주말뿐만 아니라 주중에도 오후부터 많은 사람들이 인사동을 찾고 있다. 그리고 인사동에 있는 화랑에서는 매주 새로운 전시회들이 열린다. 하지만 문화예술을 즐기기 위해서 이곳을 찾기보다는 단지 쇼핑하고 먹고 마시고 소비하기 위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거리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지만 갤러리에 들어가 보면 대부분 작가나 갤러리 관계자들만 전시장을 지키고 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현재 한국문화가 점점 더 소비 중심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여러 사례 중 하나이다.


국가경제가 발전하려면 어느 정도 소비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는 1980년대 이후 국민들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지나치게 물질 중심적인 사회가 되었다. 한 국가가 건전하고 성숙한 사회가 되려면 물질문화와 정신문화가 균형있게 발전해야 한다. 따라서 인사동이 그 성격이 변질되어 문화예술과 거리가 먼 곳으로 변화되는 것은 결코 긍정적이지 못한 현상이다.

국가와 시민단체 차원에서 인사동이 실질적으로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시민들이 좀 더 문화예술과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까워지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문화예술의 시대인 21세기 세계문화사에 한국의 발자국을 남기는 기초적인 토대가 될 것이다.
#인사동 #변질 #소비공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2.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3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4. 4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5. 5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