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도 안 되는 거리를 10년도 더 걸려서...

부처님 오신 날 문경 봉암사 가는 길①

등록 2007.05.27 12:53수정 2007.05.27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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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초파일의 봉암사. 대웅보전 뒤로 희양산이 보인다.
사월 초파일의 봉암사. 대웅보전 뒤로 희양산이 보인다.이상기
봉암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약 10여년쯤 전이다. 경복궁 옆에 있는 법련사에서 불교 공부할 때였는데, 봉암사에 다녀온 정상보 선생이 불사를 통해 봉암사 옛 절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참선하는 스님들도 공부를 게을리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얼마가 지난 후 유홍준 교수의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 봉암사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도 역시 유 교수는 '촬영금지와 출입금지' '무너진 환상의 절집 봉암사'라는 부제를 통해 봉암사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지증대사 적조탑비(좌) 정진대사 원오탑비(우).
지증대사 적조탑비(좌) 정진대사 원오탑비(우).이상기
그후 나는 남한강과 월악산 지역에서 활동한 스님들에 대해 연구할 기회가 있었다. 이 지역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큰스님들이 신라 말의 원랑선사, 신라 말·고려 초의 법경대사와 홍법국사, 고려 말의 보각국사와 대지국사, 조선 초의 함허당 득통이다. 이들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금석문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고 자연스럽게 지증대사 적조탑비와 정진대사 원오탑비의 비문을 읽게 되었다.

지증대사(824~882)는 원랑선사(816~883)와 동시대 사람이고, 정진대사(878~956)는 법경대사(879~941)와 동시대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함허당 득통기화 스님은 충주 출신으로 봉암사에 부도탑을 남기고 있다. 그런 저런 인연으로 봉암사를 꼭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원을 2007년 5월 24일에나 풀 수가 있었다.

오전 9시도 안 되었는데 상괴리 봉암사 입구 삼거리에 훨씬 못 미쳐 차들이 들어가지를 못했다. 경찰들이 차를 길옆에 주차시킨 다음 걸어서 들어가라고 유도했다. 차를 내려 봉암사 입구 삼거리까지 걸어간 다음 그곳에서 15인승 승합차를 타고 봉암사 주차장까지 간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가니 9시 30분이다. 사월초파일 치고는 비교적 쉽게 도착한 것이라고 옆에서 누가 귀뜸을 한다.

점심 공양을 위해 불유각에서 묵은지를 채 써는 보살들.
점심 공양을 위해 불유각에서 묵은지를 채 써는 보살들.이상기
장작불로 미역국을 끓이고 있다.
장작불로 미역국을 끓이고 있다.이상기
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점심 공양을 준비하는 보살들의 모습이다. 샘이 있는 불유각(佛乳閣)에서는 묵은지를 잘게 송송 써는 작업이 한창이고, 그 옆 가마솥에는 국이 장작불에 펄펄 끓고 있다. 점심 공양 시간이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라 벌써부터 수십 명도 넘는 신도들이 각자 맡은 일로 분주하다.

내가 "그래, 준비하는 음식이 무업니까?"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러자 한 보살이 비빔밥과 미역국이라고 대답한다. "비빔밥에는 무엇이 들어가나요?"하고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러자 "묵은지, 무 생채, 콩나물, 묵나물, 미나리, 김 부스러기, 고추장"이라고 즉시 대답한다.


"그러면 밥은 어떻게 하느냐?"고 내가 물었다. "밥은 방앗간에서 쪄옵니다"라고 대답한다. 밥은 얼마나 하느냐고 다시 물으니, 쌀 12가마를 주문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초파일에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에 쌀을 12가마로 줄인 것이라고 덧붙인다.

대중들에게 제공되는 점심 공양. 비빔밥과 떡 그리고 미역국이 전부이다.
대중들에게 제공되는 점심 공양. 비빔밥과 떡 그리고 미역국이 전부이다.이상기
절을 찾는 대중들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는 그들의 정성이 고맙기만 하다. 나중에 점심 공양을 하면서 들은 얘기인데, 일부 사람들은 그 음식이 맛이 없다고 남기기도 해 잔반이 들통으로 두통쯤 나왔다고 한다. 사실 절 음식에는 고기도 안 들어가고, 향신료도 안 들어가고, 특별한 양념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맛이 밋밋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런 순수하고 담백한 맛을 즐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좀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열심히 봉사하는 보살들의 모습을 보면서 스님들 못지않은 불성이 그들에게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들 작업에 참여하는 신도들 대부분이 나이든 여성분들이어서 불교 역시 노쇠해가는구나 하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설겆이를 하는 보살들 뒤로 점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긴 줄이 보인다.
설겆이를 하는 보살들 뒤로 점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긴 줄이 보인다.이상기

덧붙이는 글 |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문경 봉암사를 찾았다. 조계종의 대표적인 수도도량으로 초파일에만 문을 연다고 해서 어렵게 갈 수 있었다. 부처님 오신날 봉암사 풍경을 약 5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그러한 풍경을 통해 봉암사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려 한다.

덧붙이는 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문경 봉암사를 찾았다. 조계종의 대표적인 수도도량으로 초파일에만 문을 연다고 해서 어렵게 갈 수 있었다. 부처님 오신날 봉암사 풍경을 약 5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그러한 풍경을 통해 봉암사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려 한다.
#봉암사 #부처님 오신날 #지증대사 #정진대사 #불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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