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된 영도교이정근
유배 떠나는 단종 역시 가슴이 아팠다. 부인을 한양에 남겨두고 영월로 떠나는 몸, 언제 다시 한양에 돌아와 사랑하는 부인을 만나게 될지 기약이 없었다. 흥인문 밖에 거처를 마련했다는 소식은 들었던 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개를 돌렸다.
그 때였다. 그 자리에 사랑하는 아내 정순왕후가 있지 않은가.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 망부석(望夫石)처럼 서있는 사람은 분명 사랑하는 부인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은 마주쳤다. 눈동자가 불꽃을 튀겼다. 불꽃은 재가 되어 이슬처럼 흘러내렸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과 함께 단종은 멀어져 갔다.
이렇게 떠나가고 떠나보낸 두 사람은 영영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이것이 마지막 이별이었다. 이 때 이들의 나이 단종 열다섯, 정순왕후 열여섯 살이었다. 이때부터 백성들은 이 다리 원래의 이름 왕심평대교(旺尋坪大橋)를 버리고 영도교(永渡橋)라 부르기 시작했다.
영도교는 영영 건넌 다리, 영 이별다리, 영이별교라는 뜻을 담아 단종과 정순왕후의 애틋한 이별을 가슴에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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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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