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200회

등록 2007.05.22 08:18수정 2007.05.22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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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지… 아무리 과거의 위세가 바닥에 떨어졌다고는 하나 천년 전통의 소림무학을 한 몸에 지닌 인물이 광나한이라네. 실제 모든 무학의 기초가 소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거든."

중원 천지 방대한 지식을 머리 속에 담아 놓은 함곡이라 하더라도 무림이란 세계는 언제나 낯설다. 아무래도 무림에 대한 것은 풍철한이 더 많이 알고 있을 터.


"광나한은 세간에서 평가하길 소림이 백년 이래 배출한 최고의 고수라고 한다네. 소림에서도 부인하지 않았고… 물론 무공의 완성단계에 있을 삼십 전후에서 산문을 나서는 바람에 소림무학의 심오한 경지까지 오르지 못했을 것이란 평가도 있었지. 어느 평가가 옳은 것인지 오늘 보면 알 것이네."

"그래서 누가 이길 것이란 말인가?"

풍철한이 평소의 모습답지 않게 너무 뜸을 들이고 있었다. 함곡이 핀잔을 주듯 말했지만 풍철한의 느긋한 표정은 여전했다.

"반면에 좌 총관은 과거 삼십년 전부터 창 한 자루로 중원을 떨쳐 울린 사람이네. 무적신창이라는 외호가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지. 그는 젊어서도 일개 성(省)의 패주(覇主) 정도는 되고도 남을 사람이었네. 그런 그가 왜 이 운중보에 박혀 있는지 아는가?"

함곡에게 묻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모두에게 묻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함곡 뿐 아니라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종문천이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묻는 다는 듯 말했다.


"뭐 새삼스런 얘기요? 보주에게 처음으로 패해 완전히 굴복했다는 말이 있지 않소? 그 이후 보주를 자신의 주군으로 모시며 지금까지 왔다는 것이야 이미 다 아는 것 아니오?"

함곡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분명 모두가 다 아는 것을 물을 때는 다른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리고 이런 경우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은 질문에 대한 적합한 정답이 아니다.


"그래. 틀리지 않은 말이지. 하지만 그 내면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어. 진정으로 좌 선배가 보주를 주군으로 모신 정확한 이유 말이야."

"보주 이야기는 왜 나오는 거요?"

"그냥 들어. 좌 선배를 설명하려면 필히 보주를 말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종문천이 끼어들다가 풍철한의 핀잔을 듣고는 목을 움츠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맘대로 하슈' 라는 모습이었다.

"보주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살아있는 무신(武神)이라고 평가하지. 왜 그러냐 하면 보주는 매우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궁금증을 참다못한 혈녹접이 불쑥 끼어들었다.

"어떠한 무공이든지 한 번 보면 그것을 펼칠 수 있다는 그 능력 말이지요? 근데 사람이 정말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있어요?"

"믿지 않을 도리가 없지. 그 뿐이 아니다. 상대의 무공을 한 번만 보면 그것에 대한 장단점을 완전히 파악한다고 한다. 물론 그것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과장되었다고 봐야지. 흉내는 내도 그것을 완전하게 운용한다고 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면 단 일격에 보주를 죽이거나 치명상을 주지 못하면 누구든 질 수밖에 없다는 말 아네요?"

"그렇다고 봐야지. 하지만 보주를 단 몇 초에 쓰러뜨릴 인물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것이 과거 구룡 중 천룡을 보주가 꺾을 수 있던 가장 큰 이유였고, 보주가 동정오우 중 은연중에 최고의 위치를 차지한 이유라 볼 수 있겠지."

"……!"

"철담은 일생을 통해 단 한 번 천룡에게 패한 적이 있어. 천룡은 철담을 살려주었지. 그것이 아마 구룡의 신화를 종식시킨 시발점이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거야. 철담은 천룡과 대적했던 그 경험을 보주에게 말해 주었을 테니 말이야."

보주는 역시 무서운 인물이었다. 그토록 회에서 마음에 안 들어 하면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를 내세우려 애썼던 이유가 보주 말고는 천룡을 꺾을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좌 선배 역시 그 점에서 완전히 굴복한 거야. 패한 후에 오히려 보주에게 자신의 독문무공에 대해 교정(矯正)을 받았다고 하더군. 어떻게 보면 사사(師事)를 받은 셈이지. 나이는 그리 차이나지 않지만 마음으로는 스승과 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다."

단지 보주의 무위에 굴복해 주군으로 모신 것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토록 지극하게 보주를 모시기 어려운 일. 그런 사정이 있었다면 좌등이 지금까지 보주에게 보여 온 태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무적신창께서 이길 것이란 말이에요?"

혈녹접이 다시 묻자 풍철한이 다른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나에게 둘 중 한 사람과 붙어야 한다면 나는 무조건 광나한을 선택할거야. 좌 선배하고는 정말 자신이 없거든."

풍철한의 입에서 자신이 없다는 말은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솔직한 말이었다. 그는 어디를 가든, 누구에게 말을 하든, 자신이 없다고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아마 운중보 밖이라면 보주와도 한 판 붙을 수 있다고 떠들 사람이 바로 풍철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분명 어제 좌 선배는 보주께 숭무지례에 대해 보고를 했을 것이고, 만약 거기서 보주가 몇 마디 해주었다면 광나한은 수십 초 정도도 버티지 못하고 패할 것이지."

너무나 단정적인 말이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좌등과 광나한은 직접 겨루어보기 전에는 그 승부를 알 수 없을 호각지세(互角之勢)로 생각했다. 강호의 평판으로는 물론 좌등이 약간 앞서고 우위에 서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수백 초 정도가 지나야 겨우 승부가 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고수들의 승부에 있어서 무위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면 약간의 실수가 승부와 직결되기 때문에 좌등이나 광나한 같은 인물들의 승부를 예측하기란 사실 매우 어렵다. 더구나 단정적으로 그 결과를 예측해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세간의 평판대로 보주에게 그런 능력이 있고, 만약 풍철한의 말대로 광나한의 무공에 대해 몇 마디라도 해주었다면 그것으로 이미 승부는 난 셈이었다. 다시 한 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보주의 무서움에 자신도 모르게 전율했다. 만약 그 상대가 나라면 하는 생각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할 일이었다. 그들은 한 동안 입을 닫았다.

"정말 자네는 의외로 많은 것을 알고 있군. 더구나 가끔 나를 경탄케 마지않는 매우 뛰어난 직관력을 가지고 있어."

함곡이 아주 신기하다는 듯 풍철한을 보고 말했다. 정말 풍철한은 특이한 친구였다. 세간의 평판이 어찌하든 함곡이 인정하는 친구였고, 가끔 함곡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는 친구였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나?"

풍철한이 웃으며 말을 받자 함곡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서서히 자네의 본래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서 그러네. 그리고 오늘 자네의 태도는 어제와 영 딴판이니 말이네."

풍철한 역시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그것이 궁금한가? 다른 이유는 없네. 어젯밤부터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하니까 자네가 이미 감을 잡고 있다고 말한 쇄금도의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하면 이해해 주겠나? 나름대로의 생각이지만 아주 재미있더군."

풍철한의 말에 함곡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그것은 설명하기 매우 애매한 호기심 같기도 하고, 미심쩍은 것 같기도 해 함곡의 내심을 알아볼 수 없었다.

"호오… 그거 정말 잘 된 일이군. 그 말은 이제 자네가 뒤에 물러서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그건 아니지. 자네의 강요… 아니야… 아니지. 자네의 요구에 의해서 우리는 보주께서 주신 용봉쌍비를 저 자식에게 주었단 말이야. 사건 해결은 저 자식이 해야지. 우리는 충실히 돕기로 하지 않았나?"

그러더니 함곡이 뭐라 하기 전에 시선을 돌려 설중행을 보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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