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파리, 몬트리올

[아이 둘 데리고 나선 여행 3] 캐나다 여행기②

등록 2007.05.23 19:07수정 2007.05.24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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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구시가지를 도는 관광 마차, 30분 투어에 60불.
몬트리올 구시가지를 도는 관광 마차, 30분 투어에 60불.김윤주
몬트리올에 사는 친구를 통해 전해들은 이야기다. 유학 중인 이 친구,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을 탔단다. 두어 정거장쯤 지났을까 갑자기 지하철이 멈춰서더니 안내방송이 나오더란다.

"지하철 멈췄습니다. 금세 복구 됩니다."
"(5분 후) 아닙니다. 금세 복구 안 됩니다. 서서 계신 분은 바닥에라도 앉으세요."
"(15분 후) 불안해하지 마세요. 저희가 승객 여러분을 잊어버린 게 아닙니다.(승객들 모두 웃음)"
"(다시 5분 후) 안 되겠습니다. 사다리 설치할 테니 그거 타고 탈출하세요."
"(다시 5분쯤 후) 사다리는 다음 기회에 타세요. 다시 출발합니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하철은 다시 움직이고, 그렇게 오랜 시간 지하철 안에 갇혀 있던 승객들도 불평 하나 없이 아무 일 없었던 듯 그냥 그렇게 자기가 내릴 역에서 내리더란다.

워낙 말재주도 있고 재치 있는 친구인지라 상황을 더 재미있게 전해주기도 했겠지만, 언젠가 읽은 글에서도 몬트리올 사람들이 유난히 느긋하고, 다정다감하다는 글귀가 있었던 걸 보면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음직한 일화이기도 하다.

음악과 예술이 살아 숨쉬는 매력적인 도시 '몬트리올'

빨강색이 산뜻했던 도로 표지판
빨강색이 산뜻했던 도로 표지판김윤주
몬트리올은 '북미의 파리'라 일컬어지곤 한다. 파리 외에 프랑스어를 쓰는 가장 큰 도시이기도 하지만 단지 언어 때문에만 그런 별명이 붙은 건 아니다. 흔히, 현대와 고전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음악과 예술이 살아 숨쉬는, 아름답고 고풍스런 매력적인 도시가 바로 몬트리올이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노틀담 성당
노틀담 성당김윤주
한 때 마크 트웨인은 '교회의 창문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절대로 돌 하나 던지기 어려운 도시'라고 몬트리올을 묘사하기도 했다. 그만큼 교회나 성당이 많다는 이야기인데, 그 중 이름난 두 곳을 둘러보았다. 노틀담 성당과 성 요셉 성당.

노틀담 성당(Notre Dame Basilica)은 외관이 파리의 그것과 거의 흡사하다. 아니, 아주 오랜 내 기억으로는 똑같은 것 같기도 하다. 1824년에 건축되기 시작해 1830년 완공된, 몬트리올에서 가장 역사 깊은 성당이다. 네오고딕 건축양식의 결정판이며, 화려하고 웅장하고 신비로운 아름다움 때문에 매년 수백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도 성당 안에는 관광객이 가득했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황금빛 성당 내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황금빛 성당 내부김윤주
청록빛과 황금빛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화려하고 우아한 천정, 웅장하고 신비로운 느낌의 파이프 오르간
청록빛과 황금빛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화려하고 우아한 천정, 웅장하고 신비로운 느낌의 파이프 오르간김윤주
성당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성당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김윤주
성당 내부는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짙푸른 색과 황금색이 주를 이루며 연한 파랑, 빨강, 보라, 은색으로 장식되어 있는 천정을 올려다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화려함과 우아함을 동시에 뿜어내는 천정에서 시선은 자연스레 성당 뒤편의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으로 옮겨가게 된다. 신비롭고 웅장하기 이를 데 없다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상상하며 성당 내부의 화려한 장식들을 둘러보았다.

대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성서 내용의 장면들을 묘사하는 것과 달리, 노틀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몬트리올의 종교적 역사와 관련된 장면들을 묘사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천정에까지 장식되어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정교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황금빛 조각과 장식들 역시 성당의 화려함을 더해 주는 요소이다.

'돔'의 크기는 성베드로 성당에 이어 세계 두 번째

성요셉 성당
성요셉 성당김윤주
성당 내부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자니, 열심히 사진기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 사이로 한쪽에서 부지런히 바닥과 조각상들을 닦고 있는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에겐 여름날 추억 한 자락을 담아줄 낯선 여행지의 하나인 이 곳이 누군가에겐 일상을 채워가는 생활의 터전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잠시 스치기도 했다.

캐나다 출신 가수 셀린디온(Celine Dion)이 1994년 결혼식을 올리고, 이후 아기 세례식까지 받게 해 더 유명해졌다는 노틀담 성당. 밖으로 나오니 지도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관광 마차를 타고 도시를 돌아보는 사람들,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 등 관광객들로 성당 앞은 가득 차 있었다. 우리도 그 틈에 섞여, 노점상에서 꼬맹이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인 후 성요셉 성당으로 향했다.

몽루아얄(Mount Royal)의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는 성요셉 성당(Saint Joseph's Oratory). 성요셉 성당은 캐나다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게다가 높이가 97m에 이르는 돔은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큰 규모이기도 하다.

1904년 앙드레 수도사(Brother Andre)는 노틀담 대학 근처의 동산 한 귀퉁이에 작은 예배당을 하나 짓기 시작한다. 당시의 예배당은 지금처럼 큰 규모가 아니었는데 다리 아픈 병자를 고치는 수도사 앙드레의 신력 때문에 이 곳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1967년 완공 당시엔 성당의 규모도 지금처럼 커지게 되었다 한다.

맥주 한 캔으로 아쉬움을 달래다

환자들이 놓고 갔다는 지팡이들
환자들이 놓고 갔다는 지팡이들김윤주
성당 입구의 한켠에는, 다리 아픈 환자들이 들고 왔다가 성당을 나설 때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어 두고 갔다는 목발들이 잔뜩 쌓여 있다. 성당이 어찌나 큰지 내부엔 에스컬레이터를 몇 번을 갈아타고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저 멀리 지평선, 그 아래 펼쳐져 있는 몬트리올. 이 도시의 밤거리를 거닐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온종일 걷느라 지친 꼬마 둘을 데리고는 무리였다.

몬트리올의 직장인들은 재즈와 발레 감상 따위로 하루의 피로를 풀곤 한다는데 한밤의 재즈 공연장을 찾아보지 못한 채 그저 유명한 건축물이나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 참 아쉬웠다.

4살, 7살짜리 계집아이 둘이랑 함께 하는 여행은 가는 곳마다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다. 혼자 훌쩍 떠나는 여행과 꼬맹이 둘을 대동한 여행은 그 내용과 색깔이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너무나 당연한 그것에 익숙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게 바로 인생이라는 걸, 여행지가 꽤 많이 늘어난 지금쯤에야 어렴풋이 깨달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엄마인가 말이다. 하하.

호텔에 돌아와 지친 꼬마 둘 재워 놓고 남편과 둘이서 캔 맥주 하나로 재즈바에라도 앉아 있는 듯 아쉬움을 달랬다.

성요셉 성당에서 내려다 본 몬트리올 풍경
성요셉 성당에서 내려다 본 몬트리올 풍경김윤주

덧붙이는 글 | 2006년 늦여름, 나이아가라 폭포, 천섬, 토론토, 몬트리올, 오타와, 퀘벡시티 등을 둘러본 캐나다 여행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2006년 늦여름, 나이아가라 폭포, 천섬, 토론토, 몬트리올, 오타와, 퀘벡시티 등을 둘러본 캐나다 여행기입니다.
#몬트리올 #노틀담 #성요셉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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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통해 시대를 넘나드는 기호와 이야기 찾아내기를 즐기며,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인문학자입니다. 이중언어와 외국어습득, 다문화교육과 국내외 한국어교육 문제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학교수입니다. <헤밍웨이를 따라 파리를 걷다>, <다문화 배경 학생을 위한 KSL 한국어교육의 이해와 원리>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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