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방에 따른 생산성증대 효과 메커니즘. 출처 : 한미 FTA 경제적 효과 분석 (2007.4.27) p.16.
그러나 무역개방과 경제성장간의 관계는 세계 주류경제학계 내에 여전히 중요한 논쟁거리이며 가까운 미래에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즉 이 문제는 이론적으로도, 또 실증적으로도 여전히 논쟁 중이다. 이에 관련된 많은 이론적 전개와 실증적 연구가 최근까지도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만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려운 질문, 허탈한 답
특히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인 로드릭(Rodrik)과 로드리게즈(Rodriguez)는 최근 논문(2001, 2003)을 통해 무역개방이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주장을 비판하였다. 이들의 결론은 무역개방이 경제성장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을 대표적인 친개방론자인 볼드윈(Baldwin) 교수도 부분적으로 수용하였다. 즉 무역개방만으로 경제성장이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거시정책(안정적 환율정책, 신중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등)과 제도정비(정부 내 부정부패 척결 등)가 함께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대표적인 친개방론자인 크뤼거(Krueger, 1992)는 "자유무역이 파레토적정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시장과 제도가 그 결과를 비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개방이 성장을 촉진하려면 대단히 많은 개혁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허탈한 답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정도의 결론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필요한 제도개혁과 거시정책, 미시 산업정책에 개방에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코 개방이 이러한 개혁을 자동적으로 가져 오지 않는다.
세계의 저명한 개방 찬성론자들도 '외부충격에 의한 내부개혁' 또는 '선개방, 후개혁'논리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미FTA를 제도개혁과 산업혁신의 외부적 충격요법으로 사용한다면 한미FTA가 실패할 것은 뻔한 일이다. 더군다나 우리 정치시장의 후진성은 동시적 제도개혁 가능성을 더욱 낮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CGE모형의 결과는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KIEP의 한미FTA에 따른 거시경제적 효과가 '뻥튀기'일 수 있다는 두 번째 이유는 GDP 6%증가의 숫자를 믿기에는 CGE모형 자체의 문제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CGE모형은 계산(연산)이 가능한(computable) 일반균형모형이다. 몇 개의 시장만을 분석 대상으로 하는 부분균형과 달리 이론적으로 모든 시장을 동시에 분석하고자 하는 모형이다. 이 일반균형모형의 장점은 어떤 시장에서의 예상치 못한 충격이나 혹은 외생적인 정책적 변화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부 충격에 따른 새로운 균형을 추적하여 경제지표의 변화를 계산하고 이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추계하는 것이다. KIEP가 사용한 GTAP도 바로 CGE모형을 구현한 하나의 프로그램인 바, 무역정책의 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추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CGE모형은 아주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우선 CGE모형에서는 소비자간의 선호 상의 차이와 생산자간의 생산기술 상의 차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우리 쌀에 대한 선호와 농부의 선호가 동일하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LCD를 생산하는 재벌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기술의 차이도 인정되지 않는다. 재벌총수와 단칸방에 사는 서민의 선호도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들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왜냐면 만약 이러한 차이를 인정한다면 CGE모형이 '연산불가능 일반균형 모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개별적 차이를 인정한다면 개인 효용함수를 모두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개별기업의 생산기술을 모두 알고 있어야만 합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애로우(Arrow)는 사회후생함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가능성 정리를 증명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GE는 사회후생함수를 갖는다. 개인의 효용을 단순히 합산한 이른바 공리주의적 효용함수를 가정한다. 사회후생함수를 가정하고 그 함수의 극대치를 구한다. 사회후생함수가 개인의 효용을 단순 합산한 것이므로 그 결과는 기존 부의 분배 상태에 비례하여 모든 사람에게 나눠지게 될 것이다. 즉 CGE는 이론 상 분배문제는 다룰 수 없게 되어 있다.
둘째 CGE모형은 미국 MPS모델이나 Brookings모형과 같은 대형 예측모델(Big Model)과 마찬가지로 노벨상 수상자인 루카스(Lucas) 교수의 비판에 치명적이다. 이 루카스 비판은 경제주체자인 소비자와 생산자가 정부정책의 변화로 발생할 수 있는 미래의 경제적 효과를 예상하고, 자신들의 현재 경제적 행위에 이를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에, 정부정책의 효과가 예상대로 발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비판을 기술적으로 해석하면 정부의 경제정책의 발표는 경제주체자의 경제행위를 변화시켜 행태방정식의 파라미터 값을 변화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대형모형들은 파라미터의 값이 고정되었다고 가정하고 외생적으로 주입하기 때문에 예측오차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큰 예측오차, 신뢰를 잃은 거대모형
실제로 1970년대와 1980년대 이러한 대형 모델들의 세계경제에 대한 예측은 빗나가기 시작하였고 두 개의 방정식에 불과한 미국 연방은행 세인트 루이스지점의 시계열 예측모형보다 오히려 예측오차가 크게 발생하면서 이러한 거대모형(Big Model)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학자들도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CGE의 가정은 모든 시장에서 균형에 도달한다는 시장청산조건이다. CGE세계는 언제나 시장이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초과수요나 초과공급에 따른 경기변동도 존재하기 어렵고 노동시장에 실업도 존재할 수 없다. 더군다나 실업이 어떻게 해소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중요하지도 않다.
또한 CGE세계에서는 시장이 항상 균형에 도달하기 때문에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할 필요가 없고 나아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장청산의 가정은 신고전학파와 케인즈 경제학파간 오랫동안 주된 쟁점이었다는 것은 경제학도라면 대부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외 많은 CGE 가정 중 여전히 논란거리의 가정은 상품과 생산요소 시장에서 완전경쟁과 완전정보(현실적으로 정보의 불완전성에 따른 여러 가지 경제적 문제는 이미 스티글리츠 등을 포함한 많은 경제학자에 의해 밝혀진 바 있음)를 전제하고 있거나, 생산에 있어서 규모수익의 불변을 가정(따라서 내생적 성장론은 원천적으로 고려대상에서 제외되었음)하거나, 생산요소의 완전 이동을 가정(따라서 실업의 사회적 비용이라든지, 자본이동에 따른 매몰비용이라든지 하는 단기 시장조정비용을 무시하고 있음)하는 등 아주 다양하다.
KIEP가 사용하고 있는 미국 퍼듀대학의 GTAP모형과 세계은행의 Linkage모형은 이러한 CGE모형에 해당한다. 따라서 KIEP가 한미FTA의 경제적 효과를 추계하는 데 활용하였던 GTAP 모형도 CGE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고스란히 갖게 된다. 게다가 GTAP모형은 그 외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모수의 불명료성과 부정확성, 무역수지의 통계상 오류 등 이 그것이다.
결국 수 없이 많은 가정을 전제하는 이 CGE는 계산(연산) 가능한 가상의 세계일뿐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 경제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따라서 이러한 GTAP과 같은 CGE 모형의 예측결과는 엄격하고 좁게 해석할 수밖에 없고 그 예측치로 정책을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다만 최초에 참조할만한 숫자로 이해되어야지 이걸 대 국민 홍보의 유력한 숫자로 사용하는 건 웃음거리일 뿐이다.
물론 이러한 CGE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GTAP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KIEP 주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11개의 국책연구소가 모두 나서서 뻥튀기 결과를 합당하다고 주장한다면 대다수의 국민과 비전문가들이 믿을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GTAP의 역사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KI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