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별 수능점수 공개, 입시경쟁 부추긴다

[주장] 왜 기득권세력은 교육정보공개를 원하나

등록 2007.05.21 09:44수정 2007.05.2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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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5월 21일 오후4시

내용 정정합니다

21일 오전 9시 30분께 부터 5시간 30분 동안 기사에 연구목적을 위한 정보공개가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고 썼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연구목적을 위한 수능, 학업성취도 원 데이터 정보공개가 현재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잘못된 사실을 독자여러분께 전달한 점 사과드립니다.
조전혁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상임대표, 이명희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운영위원장과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지난 2005년 5월에 교육부를 상대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와 '대입 수학능력시험(수능)' 결과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었다. 교육부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이들은 2006년 1월, 서울행정법원에 공개청구기각 취소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2006년 9월에 '학업성취도평가를 제외한 수능 결과 자료는 공개하라'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시민사회에 파문을 던졌고 교육부는 항소했다. 지난 4월 27일 서울고등법원은 '학업성취도평가와 수능 결과 자료를 모두 공개하라'며 1심에 비해 더욱 공개범위를 넓힌 판결을 내렸다.

또,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대표 발의하여 제출한 '교육 관련 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특례법안'(약칭 교육정보공개법)이 4월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수능결과 정보를 공개하려는 정치적 흐름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한국사회 입시경쟁, 아직도 부족하다?

교육관련 시민단체들은 5월 들어 '(가칭) 교육정보공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대응에 나섰다. 올 초 3불 논란에 이어, 이번엔 교육정보공개를 둘러싸고 다시 대립각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한나라당의 발의로 교육정보공개법이 통과되자마자, 5월 1일자 사설을 통해 교육정보공개 논란의 핵심을 아래와 같이 정확히 짚었다.


"교육정보공개법의 핵심은 수능이나 전국 학력평가에서 드러나는 학교 교육성과의 공개 여부다."

학교의 교육성과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아이들이 그 학교에 다님으로써 인간적으로 보다 성숙했는가, 혹은 아이들의 시민적 비판의식이 발달했는가, 혹은 저소득층 아이들의 사회 통합에 기여했는가 등 학교는 수많은 교육성과를 낼 수 있다. 그런데 <조선일보> 사설이 적시한 '수능이나 전국 학력평가'에서 드러나는 학교의 교육성과란 결국 입시서열일 수밖에 없다.


교육정보공개는 입시서열 공개를 의미할 뿐이다. 입시서열이란 특수한 부문이 교육이라는 일반적 이름으로 불리는 것 자체가, 교육정보 공개를 압박하는 세력의 비교육적 사고방식을 웅변한다. 교육정보 공개라는 이름으로 학교별 학생인권보호 정도, 장애아동 학습권 보호 정도, 학교자치실현 정도, 교육관료 및 재단의 부패전횡 정도 공개 등의 내용을 담을 수도 있지만 입시서열 공개라는 가장 비교육적인 것이 주 내용이란 점이 문제다.

시민단체들이 반대하는 것은 교육정보 공개 그 자체가 아니라, 학교별 입시서열, 입시점수 공개다. 이것은 그렇지 않아도 망국적 입시경쟁으로 황폐해져가는 우리 교육에 극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같은 사설에서 정보공개를 해야 하는 이유로 "그렇게 해야 학교와 교사가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 학교 선생님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열심히 실력을 쌓고 정성을 다해 가르쳐야만 공교육(公敎育)이 살아난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교육의 마당도 좁아지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도 인정했듯이, 또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이나 뉴라이트들이 제기한 소송이 학업성취도 점수와 수능 점수 공개요구라는 것을 보더라도, 교육정보 공개 논란의 핵심은 분명히 입시정보에 있다. 이것을 통해 학교와 교사가 자극을 받고 경쟁이 시작된다는 것은 입시경쟁체제를 지금보다 더 강화하겠다는 말이 된다.

학생인권보호경쟁이나 학교자치실현경쟁, 인간교육내실화경쟁 촉진 같은 것은 교육정보공개의 취지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셈이다. 오로지 입시경쟁체제심화를 위해 교육정보를 공개하라는 세력은 도대체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한국사회에 입시경쟁이 부족한가?

학교별 수능 점수 경쟁이 지금보다 더 격화된다고 공교육이 살아나지 않는다. 입시경쟁과 교육은 서로 상극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학교가 입시경쟁에 몰두하면 할수록, 그래서 입시경쟁이 격화되면 될수록 사교육의 가치는 커져간다. 사교육이란 나무는 입시경쟁이라는 양분을 통해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교육정보를 공개하라는 세력은 경쟁촉진 외에도 연구목적을 위해서, 또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 또 수요자를 위해서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고 한다.

연구목적이라 하더라도 일단 공개로 방향성이 잡히면 결국엔 일반에게 다 알려지게 된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새삼스럽게 수능 점수를 더 공개할 필요는 없다. 대도시보다는 지방, 강남보다는 강북, 부자보다는 저소득층 자녀의 학업성취도가 떨어진다는 걸 이 나라에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수요자를 위해 각 학교별 점수가 세세히 공개되면 수요자들은 선택하려 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과 같은 배정 방식의 고교 평준화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학교별 점수차는 학교별 서열로 이어진다. 결국 고등학교 서열화로 가는 것이다.

대학교의 학교별 입학고사 점수는 과거부터 공개되어 있었다. 그 결과는 기득권세력이 주장하듯 대학교간의 경쟁촉진, 양극화 해소 등이 아니라 대학서열체제 고착화, 명문대 자원 독점 심화였다.

만약 점수차에 의해 고교별 서열이 정해지고 나면, 지금 양극화 해소를 위해 정보공개가 필요하다는 세력은 그때 가선 엘리트 중심주의, 국가경쟁력 등의 논거를 들며 일류학교 집중지원정책을 역설할 것이다. 또, 대학부문에서와 같은 입시자유화를 주장할 것이다.

이런 식이면 역사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입시경쟁으로 황폐화된 한국 교육에서 그나마 유의미하게 교육의 공공성을 지켰던 평준화의 불씨가 꺼지는 것이다. 교육정보 공개라는 말로 치장된 입시정보 공개는 막아야 한다. 정책당국이 입시정보를 파악해 뒤쳐진 학교들을 지원하면 될 일이지, 대중 앞에서 공공연히 입시서열을 공표할 이유는 없다.
#수능점수 공개 #교육정보 공개 #입시경쟁 #교육정보공개법 #교육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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