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철 평론가(왼쪽), 심진경 평론가(가운데), 이기호 소설가(오른쪽)이정환
이상한 '아담들' 그리고 '탈한국', '탈여성'
논쟁은 심진경 문학평론가(아래 호칭 생략)의 '한국 문학, 어디까지 왔나'란 주제 발표를 통해 촉발됐다.
심진경은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문학은 다양한 가치들의 출현과 충돌로 사회적 통합이 불가능한 현실만큼이나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분열적이고 복합적인 변화를 겪어왔다고 할 수 있다"면서 "민주주의 학습에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더 중요한 역할을 해온 한국문학이 과연 지금도 그런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럽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민중이라는 상징적 정체성으로는 포섭되기 어려운 다종다양한 개인의 출현을 감지하고 이를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통찰로 이어가려는 최근의 문학적 노력에서 우리는 한국문학의 민주주의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로 '지금, 한국 문학의 자리'를 민주주의의 진행으로 해석했다.
장정일의 <아담이 눈뜰 때>를 "1970·80년대의 민중, 민족문학에 대한 반성과 대안으로 등장한 1990년대 문학의 시작"으로 소개한 심진경은 "똥과 개가 될망정 자본주의 사회가 강요하는 삶은 거부하리라는 아담의 격렬한 제스처는 이후 무수한 아담의 아바타를 만들 수 있었고, 그들은 모두 문제적 개인 영웅"이었지만 "1980년대 문학에 대한 일종의 대항문학 성격이 짙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심진경은 2000년대 소설에서는 "이와 같은 대타 의식이 걷혀 있다"며 윤성희, 박민규, 김애란, 표명희, 김중혁, 이기호 등 젊은 작가의 소설을 예로 들었다.
심진경은 "그들의 소설은 가볍다고도 할 수 있으나, 대타 의식이 불러오는 강박과 포즈에서 한결 자유로운 것만은 분명하다"면서 소설에 나타난 "그들은 소속 없이 떠다니는 존재들이며, 스스로를 삼류라 자처하지만, 그런 소속 없음과 반사회적 가치 지향이 사회 전체에 대한 강렬한 분노와 반항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상한 아웃사이더적 개인주의자"라는 말로 1990년대 문학과의 차이를 설명했다.
'이상한 아웃사이더적 개인주의자'가 나타난 배경에 심진경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계급 고착화와 IMF 이후 빈부 격차의 확대, 전반적인 소득 수준의 하락이 불러온 불안 의식으로 대표되는 전보다 더욱 비참해진 현실이 있다"고 해석했다. "1990년대 소설을 활보한 자유주의자들의 선택이 그야말로 자유로운 선택이었다면, 2000년대 소설의 그것은 어찌 보면 강요된 선택"이란 것이다.
그리고 심진경은 2000년의 '이들에게서'는 "자신의 열등한 사회적 지위에 대한 계급적 자의식이 있긴 해도 현실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자각이나 불평등한 사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의지로 이어지지 않고,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통해 자기의 계급을 규정하고, 거기에 항구적 가치를 부여하는 노력은 거부되는" 특징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진경은 이로 인해 "최근 소설에서 한국적 현실이 거의 재현되지 않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면서 "이즈음의 소설에 나타나는 탈한국적 경향들은 실제로 어떤 이유에서건 국경을 넘나드는 일이 많아진 세계화시대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강영숙, 전성태, 이혜경, 김영하 등의 소설에 잘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심진경은 "그리고 여성이 있다"면서 "1990년대 공지영, 신경숙, 김형경, 은희경의 작품에서 나타난 '여성'이란 생물학적 성에 대한 진지한 물음은 사라졌다"는 말로 여성 문학 역시 '탈여성적'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배수아의 '성별이 규정되지 않은 존재들', 천운영의 '남근적 여성', 강영숙의 '세계 고통에 공감하는 여성', 황병승의 '여장 남자 시코쿠'등을 예로 들면서 심진경은 "이들 소설에서 관습적인 성차의 흔적이 지워지고 새로운 여성 문학적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