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양념병에 담긴 가루녹차입니다. 생긴 모양새는 꼭 와사비(고추냉이) 분말 같습니다.이효연
이것(사진 위)은 바로 다름 아닌 가루 녹차입니다. '푸를 녹, 차 차'라고 이렇게 친절하게(?) 한문으로까지 '綠茶(녹차)'라 써두었지 않습니까? 그 아래 흰 종이에 적은 것은 일본어로 적힌 것이라 몰라서 그랬다고 치고.
아무래도 말 안 통하는 외국에 나와 아이 데리고 식당을 찾다보니 조금 긴장을 했나 봅니다. 이 '녹차'란 글씨가 왜 그 당시에는 도통 눈에 안 들어왔는지 말이에요. '이것은 무엇에 쓰는 가루인고?'하는 생각으로 한참을 이리 보고 저리 보다가 나름대로 '통밥'을 굴려보았죠. '아하! 역시 초밥의 종주국답게 와사비(고추냉이 분말)도 가루를 내서 스페셜하게 가져다 놓았군!'하며 간장 종이에 저 녹차가루를 한두 스푼 풀어 초밥을 찍어 먹어보았습니다.
'어라? 그런데 왜 매운 맛이 안 나는 거야? 너무 조금 넣었나?'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와사비를 푼 간장물의 농도가 진해져 거의 '잼 에 가까운 정도였지만 매운 맛은 전혀 나지 않더군요.
한동안 갸우뚱 하다가,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일본 사람들은 와사비 가루를 이렇게 밥에 발라 먹나 보다'하는 생각에 이번에는 생선회를 살짝 들어올려 밥과 생선회 사이에 탈탈 털어 넣어도 봅니다. 그래도 맛에는 변함이 없었고요.
옆에서 저의 이 해괴한 짓을 한참동안 말없이 곁눈질로 지켜보던 일본 아저씨가 나중에 녹차 가루를 컵에 타서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는 것을 보고서야 '아차' 싶었지만 이미 상황은 엎질러진 물!
다음날 만난 메구미상(일본 친구)에게 이 얘기를 전해주니 데굴데굴 우스워 죽겠다고 넘어갑니다. 하긴, 저도 어떤 외국인 친구가 된장을 피넛버터인 줄 알고 빵에 듬뿍 발라 먹었다고 하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마는….
일본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이라면, 일본 음식 메뉴 몇 개 정도는 꼭 일본어로 외우거나 적어가시는 게 좋습니다. 생각만큼 영어 표기가 일반화 되어 있지 않습니다. 더불어 회전초밥집에 가시게 되면 눈을 크게 뜨고 두루두루 살펴보아 저 같은 낭패는 보시지 말라는 뜻에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이 해프닝을 고합니다.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남긴 일본 우에노 거리의 회전초밥집, 저에게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듯합니다.
덧붙이는 글 | 한국에서 회전초밥집을 찾았던 것이 그러고보니 꽤 되었네요. 그간 많이 변해 혹시나 가루 녹차를 저렇게 내오는 식당이 있는지 혹시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된장국은 무료로 제공하는지도 궁금하구요. '망신스런 기억'을 남긴 아픈 경험이었지만 그날의 가루 녹차의 맛과 향은 참으로 향긋하고 좋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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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와인 바 주인. 작은 실내악 콘서트, 와인 클래스, 소셜 다이닝 등 일 만드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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