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여왕은 장미, 향기의 여왕은?

[사진] 이 계절에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들

등록 2007.05.17 18:19수정 2007.05.18 08:3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부지런하게 먼저 꽃피운 노란장미 한송이
부지런하게 먼저 꽃피운 노란장미 한송이이승철
5월도 중순을 지나면서 숲과 화단을 장식했던 아름다운 꽃들도 얼굴이 많이 바뀌었다. 거리와 꽃밭을 향기롭게 하던 라일락의 자리를 하얀 이팝나무 꽃들이 대신하는가 했는데, 어느새 아카시아 향기가 대기에 가득하다.


아파트 창문을 열자 살며시 스며든 꽃향기가 내 발길을 뒷동산으로 인도한다. 향기의 주인공은 아카시아 꽃이었다. 어제(16일) 내린 비 때문인지 꽃은 더욱 싱그럽고 향기도 진하다. 이 세상의 수많은 꽃향기 중에서 아카시아를 당할 꽃이 있을까?

뒷동산 숲 속은 온통 아카시아 향으로 넘쳐난다. 숲에 아카시아 나무가 제일 많기 때문이다. 어른 키만큼의 작은 나무에서부터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는 나무들까지 크고 작은 나무들이 저마다 하얀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고 있어서 나무와 꽃들이 몹시 흔들리고 있었지만 어디서 날아왔는지 그 바람을 헤집고 수많은 꿀벌들이 꽃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꽃향기가 진한 만큼 꿀도 많기 때문이리라.

향기 진한 아카시아 꽃
향기 진한 아카시아 꽃이승철
꽃이 흐드러진 아카시아 나무
꽃이 흐드러진 아카시아 나무이승철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꼬마들 몇이 노래를 부르며 위에서 뛰어 내려온다. 산동네 개구쟁이들이다.

"너희들 아카시아 꽃이 뭔지 알아?"


녀석들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에이! 여깃잖아요, 이 꽃이 아카시아 꽃인데 아직도 모르세요?"


녀석들은 꽃을 활짝 피운 나무를 발로 툭툭 차고 잽싸게 달아난다. 바람이 불어서인지 기분도 상쾌하다, 나지막한 뒷동산은 아카시아 꽃이 뒤덮여 거의 하얀 빛깔이다. 그런데 그 아카시아 나무들 밑에도 또 다른 꽃들이 다투어 피어 있었다.

붉은 병꽃 나무들이었다. 푸른 잎 사이사이에 한껏 붉은 꽃들이 촘촘히 피어 있는 모습이 여간 고운 자태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아카시아 그늘에서는 젊은이 하나가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깊은 사색에 빠진 모습이다. 아니 어쩌면 아카시아 향에 취해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동산을 한 바퀴 돌아내려 오는 길가의 연립주택 창가에는 꽃봉오리가 한껏 부푼 장미덩굴이 금방이라도 빨간 꽃들을 피워낼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러고 보니 아카시아 향에 이끌려 뒷동산으로 가는 길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아파트 울타리의 장미와 찔레 덩굴들도 지금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중이었다.

찔레꽃 사이에서 홀로 꽃피운 백장미 한송이
찔레꽃 사이에서 홀로 꽃피운 백장미 한송이이승철
아파트 울타리에서 꽃봉오리를 곧 터트릴 것 같은 장미 덩굴
아파트 울타리에서 꽃봉오리를 곧 터트릴 것 같은 장미 덩굴이승철
찔레들은 이미 만개한 모습이다. 가까이 다가서자 찔레향도 만만치 않다. 아카시아 향만큼 진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상당히 진한 향기가 후각을 상큼하게 자극한다. 이제 막 꽃을 피워내려고 잔뜩 커진 장미꽃봉오리들 사이에 먼저 핀 몇 송이의 장미들이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것 같다.

그래 역시 장미꽃이다, 모양이 화려하고 아름답기로는 장미꽃을 당할 꽃이 있을까. 탐스럽게 핀 장미는 5월의 여왕, 꽃 중의 꽃으로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모습이다.

오랜 호흡에 지친 사랑의 각혈
자신만의 계절에
보암직하게
토해내었다.

날숨 터질 때마다
조절된 농암에
여왕이
그 이름이다.

- 정진기의 시 '장미꽃'


장미꽃은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화가들에게도 시인들에게도 사랑을 받는 꽃이다. 장미꽃 특유의 아주 특별한 전설도 있다. 아름다운 꽃에 어울리지 않는 매서운 가시 때문이다.

찔레꽃도 상당히 아름답습니다
찔레꽃도 상당히 아름답습니다이승철
찔레꽃밭
찔레꽃밭이승철
신이 처음으로 장미를 만들었을 때의 이야기다. 사랑의 신 큐피드는 그 아름다운 장미꽃을 보고 너무도 사랑스러워 키스를 하려고 장미꽃을 향해 입술을 내밀었단다. 그러자 꽃 속에 숨어 있던 벌이 깜짝 놀라서 그만 꼬리에 있는 침으로 큐피드의 입술을 콕 찌르고 말았다.

곁에서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비너스는 큐피드를 가엾게 여겨 벌을 잡아 침을 빼내어 장미 나무의 가지에 꽂아 두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한 번 호된 아픔을 겪은 큐피드였지만 장미 나무에 침이 꽂혀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감수하며 장미꽃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의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 아름다움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장미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 땐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감수하고서야 장미를 가까이 둘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사실 요즘 한창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우리 아파트 울타리의 장미는 내가 그동안 수없이 가시에 찔리며 돌보았었다. 울타리 밖에 심겨진 장미가 자라면서 울타리 쪽이 아닌 바깥쪽으로만 자꾸 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깥쪽에는 길 건너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차량들을 주차하기 때문에 발에 걸리는 장미덩굴을 구둣발로 짓밟아 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봄부터 가을까지 장미덩굴을 볼 때마다 덩굴이 조금씩 자라는 데로 울타리 사이로 밀어 넣어 자리를 잡게 해준 것이다.

붉은병꽃
붉은병꽃이승철
붉은 병꽃밭
붉은 병꽃밭이승철
그런데 장미 가시가 보통 날카로운 것이 아니어서 그때마다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기도 하고 아픔을 참아야 했었다. 그렇게 3년간을 돌보아 준 보람이 있어서 올봄에는 정말 아름다운 장미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작은 사랑과 관심이 얻어낸 결과인 것이다.

어디 장미꽃뿐일까.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항상 작은 희생은 감수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픔을 참고 보살피는 마음 없이 어찌 귀한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고귀한 사랑이나 열매는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차디 찬 새벽이슬에 젖지 않고
피어나는 꽃이 어디 있으랴
시린 가슴에 가시하나 달지 않고
아름다운 향기 붉은 장미꽃 어디 있으랴
-
가슴 속 혼자 밤새워 그립고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장미가시에
또한 피 흘리고 죽지 않는
사랑의 시인이 어디 있으랴?

- 한휘진의 시 '가시하나 없는 장미꽃 어디 있으랴?' 중에서


찔레꽃과 장미와 꿀벌을 품은 아카시아꽃
찔레꽃과 장미와 꿀벌을 품은 아카시아꽃이승철
장미와 찔레가 뒤엉켜 자라는 곳에서 코를 벌름거리며 향기를 맡아본다. 그런데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미꽃보다 작고 초라한 찔레꽃의 향기가 월등히 진하고 달콤하다. 찔레는 모양은 장미보다 못하지만 꽃향기는 장미와 비교할 수 없는 월등한 향기를 발산하는 것이다. 얼마나 공평한 신의 섭리인가.

그런데 꽃송이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정말 볼품없는 아카시아 꽃은 그 향기가 가히 천하무적이다. 뒷동산을 뒤덮은 꽃향기가 마을까지 스며드는 그 진한 향기는 대적할 꽃이 없는 것이다. 아름다운 5월의 여왕이 장미꽃이라면 향기의 여왕은 단연 아카시아 꽃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카시아 #장미 #5월 #향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 100白, BACK, #100에 담긴 의미

AD

AD

AD

인기기사

  1. 1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2. 2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3. 3 민박집에서 이런 이불을 덮게 될 줄이야 민박집에서 이런 이불을 덮게 될 줄이야
  4. 4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5. 5 윤석열·오세훈·홍준표·이언주... '명태균 명단' 27명 나왔다 윤석열·오세훈·홍준표·이언주... '명태균 명단' 27명 나왔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