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평포럼, 지나친 자위는 몸에 해롭다

등록 2007.05.16 15:35수정 2007.05.1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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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이사철이 끝났으니 길어야 두어 달 전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인천검단은 정부의 신도시 발표로 인해 집값폭등이 일어난 곳이다. 하룻밤 사이에 수천만 원, 수억 원이 올라 집 가진 이들은 떼돈을 벌었지만 반대로 이곳까지 밀려와 세 들어 사는 사람들에겐 청천벽력의 날들이었다.

내가 지금 이사 온 곳도 바로 얼마 전에 살던 같은 동 바로 옆 라인아파트다. 전에 살던 집주인에게 2년 만에 정확히 100% 오른 가격에 재계약하자는 나의 제안이 거부당했고, 급하게 나온 옆 라인 아파트로 기존 가액의 110%를 주고 이사 온 것이다. 덕분에 설날에 더덕장사도 하고, 그간 모은 돈에 약간의 대출까지 받아 간신히 이사를 할 수 있었다.

비록 빚을 얻었지만 아이의 학교생활연속을 위해 같은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었던 나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내가 이사 들어온 집에 살던 세입자를 비롯해 검단지역의 상당수 세입자들이 2년 만에 두배 이상 오른 전세가격을 견디지 못해 보따리를 싸고 어디론가 밀려나야 했기 때문이다. 교통이 불편해도 적은 금액으로 비교적 넓은 주거생활을 할 수 있었던 서민들이, 투자용으로 집 사놓은 이들의 환호성을 뒤로 하며, 세상을 원망하고 정부를 원망하며 세상의 가장자리로 다시 밀려나야 했다.

물론 90년도에 막 출범한 경실련 세입자협의회 실무자로 시민운동의 첫발을 디딘 입장이라 부동산으로 돈버는 재주는 없었고 정부의 부동산대책을 믿고 기다리면 집값 떨어진다며 집사람을 다독였지만 이번의 신도시발표와 아파트가격 급등, 그리고 뒤이은 전세가 급등으로 인해 주거문제에 관한 한 집사람 앞에서 입도 뻥긋하기 어려운 처지로 몰렸다.

그런데 이 정부의 핵심요직을 지낸 사람들을 보면 이들이 서민과 중산층의 정부라는 참여정부에 어울리는 인물들인지 요즘 분간하기 어렵다. 출범을 우려했던 ‘참여정부평가포럼’의 핵심인사들이 쏟아내는 말과 글에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참평포럼의 대표인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 포럼을 발족하던 날 강연을 통해 중대실언을 한 바 있다. 참여정부가 억울하게 평가받아서 스스로 평가하겠다는 것까진 말릴 수 없으나 그는 서민들의 역린을 건드리는 발언을 했다. 강연 마지막부분에 핏대 올리며 ‘이제는 부동산도 꿀릴 게 없다’고 했다. 먹고 살만한 그의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 대목이다.

그러더니 어제는 ‘지금 집사면 손해’란 발언으로 사직한 이백만 전 홍보수석이 참평포럼에 올린 글을 통해 또다시 “부동산도 꿀릴 게 없다”는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참으로 먹고 살만한 고관대작출신의 한가한 인식이다.


물론 지금은 정부의 노력으로 불안하지만 부동산가격이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 이 전 실장과 이 전수석의 말대로 참여정부가 잘 해놓은 것도 많다. 권위주의도 타파했고 중장기 국가전략도 세웠으며 나름대로 정부혁신도 강력하게 추진했다. 각종 경제지표도 매우 좋다.

그러나 잘한 게 많으면 뭐하는 가.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진 것 하나만으로도 수십, 수백 가지의 잘한 일은 ‘너거들 만의 리그’인 것을. 그리고 삶이 고단해진 이유가 양극화의 심화 때문이고 그 양극화 중에 가장 핵심적인 것이 부동산 양극화라는 점을 알고 있다면 어떻게 ‘부동산도 꾸릴 게 없다’는 말이 나오는가.


아직 장담하기에 이른 부동산 가격이 양 이씨의 호언대로 잡힌다 치자. 그러면 정말 꿀릴 게 없을까. 미안하지만 그 부분에서 한참 꿀릴 수밖에 없는 게 양 이씨들이다.

그동안 대통령도 자신의 실언을 인정했다. ‘열배 남는 장사도 있고 열배 밑지는 장사도 있는데 공공주택의 부동산원가공개 할 수 없다’는 정책결정권자의 인식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서민들이 피해를 입었는가. 서민들은 살던 둥지에서 밀려나 이미 변두리로 쫒겨 갔다. 불안한 시장심리로 인해 무리하게 집을 마련했던 상당수 서민들은 정부의 뒤늦은, 강력한 부동산정책으로 인해 계속 오르고 있는 대출금리압박을 받고 있는 반면, 비싸게 주고 산 집값이 떨어지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 정부 책임자들의 뻔뻔함을 생각하면 ’정부정책 믿지 않아서 받은 불이익‘이라고 말하지 않는 게 다행일 정도다.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실기함으로써 지금도 수많은 서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고통의 분담은 없고 일방적인 고통전담이 진행형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쳐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도 꿀릴 게 없다”는 소리가 얼마나 철없는 자기변병인가 하는 것을 알기나 할는지 모르겠다. 국민세금으로 국록을 먹었던 자들의 최소한의 도리가 무엇인지 알기나 하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그들의 인식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보도에 따르면 이병완 전 비서실장이 서울 송파구 오금동에 6억8200만원짜리(공직자재산등록 상의 금액이니 공시지가라고 봐야겠다)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 집사면 손해’라는 구설로 자리를 물러난 이백만 전 수석도 각각 10억 원과 20억 원이 넘는 강남 아파트 두 채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강남에 사는 고위공직자들이 땅값, 집값 올라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대다수 서민들의 가슴 치는 사연을 알고나 있는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대통령이 주재하는 부동산대책회의 석상에서의 고뇌어린 겉 표정과는 달리 속으로는 강남주민들 대다수가 그랬다는 ‘이대로!’를 외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미 말했지만 참여정부가 잘 한 것이 많다. 그러나 잘한 가지 수가 많다고 해서 성공적인 정부인 것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줄여 외환위기를 빠르게 극복한, 말하자면 민족문제와 경제문제에서 동시에 성공한 측면이 있지만 반면, 오늘의 두통거리인 양극화와 그 원인인 비정규직 양산문제를 만든 책임도 있다.

당시 노사정협의회에서 합의한 100여 가지 사항 중 정부와 기업이 이행을 약속한 90여 가지 사항보다도 불가피하긴 했지만 노조가 양보한 한두 가지 사항, 즉 대량해고를 가능케 한 약속 하나가 서민들 대다수의 삶을 고단하게 만든 비정규직양산과 양극화의 원인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각종 경제지표가 좋아진 것은 정부가 축하받을 일이나 오늘의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오히려 서민들의 소득은 그대로인데 일부 계층의 소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으로써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은 인플레이션과 사회심리를 감안해 볼 때 사회적 실질소득의 하락으로 보는 것이 정상적인 관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권력의 핵심을 지냈다는 이들이 자중할 줄 모르고 그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서민들의 박탈감에 허탈감까지 덧씌우는 요설을 내뱉는 것은 목불인견, 그 자체다.

아직도 성패에 대한 의론이 분분한 참여정부다. 그리고 이 정부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이들이 참평포럼에 모여 있다. 자신들이 한 일을 조용하게 평가하는 것도 아니고 공개적으로 떠들면서 하는 자기평가가 극소수 범주에 속하는 권력자들의 정략적 목적을 위해서라는 것쯤은 ‘여의도 선수’들이 아닌 일반 국민도 어느 정도는 안다.

그러므로 정 그렇게 스스로를 평가하고 싶거들랑 반대 정치세력의 공격대상이 되지 않게 조용히 평가할 일이며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연회다 뭐다 해서 정치세력화의 방편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의 순수성이나마 인정받을 수 있다.

그리고 제발 말조심하기 바란다. 다른 것은 몰라도 서민생활의 힘겨운 살림살이를 좀 살펴가며 발언하기 바란다. 눈치도 없이 아무 말이나 막말 할 것이 아니라 열 받아 도끼눈 치켜뜬 서민들 시선도 의식하며 '정치질'을 하란 얘기다.

부동산도 꿀릴 게 없다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꿀리고 있는 게 부동산이다.

그리고 한마디만 더 하자. 반노진영으로부터 친노라고 낙인찍힌 사람의 ‘거침없는 하이킥’ 정도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지나친 자위행위는 몸과 정신건강에 해로운 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데일리서프라이즈에도 송고한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데일리서프라이즈에도 송고한 글입니다
#참평포럼 #이병완 #이백만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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