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 제2 폭포조명자
왕복 3시간 정도의 마춤코스였는데 무릎 시원찮은 아줌마가 걷기엔 거의 환상적인 수준이었다. 폭신폭신한 흙길을 따라 걷는 산길 양쪽에 삐죽삐죽 솟아오른 기암괴석하며 손을 담그면 그대로 연초록 물감이 들 것 같은 계곡물은 말 그대로 선녀가 하강한 선녀탕이었다.
게다가 길은 또 얼마나 순한가. 설악산이고 지리산이고 왕년에 명산깨나 다녀봤지만 이렇게 평이한 명산은 또 처음이었다. 가파르게 오르고 내리는 곳이 없으니 아프다고 앙앙대는 무릎인대가 보챌 일이 전혀 없었다.
금강산은 못 가봤지만 금강산에 비추어도 손색없을 것 같은 산이었다. 외국의 모모한 국립공원 또한 댈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가까이, 연세 드신 어르신들도 무리없이 오를 수 있는 산, 주왕산 가까이에 사는 청송 사람들은 정말 복 받은 사람들 같았다.
당대(唐代)에 주왕이라는 사람이 왕권도전에 실패하고 은둔해 살았다 하여 주왕산으로 불렸다는 전설이 있는 산. 그래서 주왕이 숨어 살았다는 주왕굴을 비롯하여 무기를 숨겼다는 무장굴, 신라군을 막기 위해 쌓은 주방산성 등 주왕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있기도 하다.
5월 초에는 주왕산에서만 자생한다는 '수달래' 축제가 있다는 데 수달래는 이미 저버리고 흔적이 없었다. 진달래보다 약간 더 짙은 색깔에 20여 개의 검붉은 반점이 꽃잎에 새겨 있다는 꽃. 신라 마장군의 칼에 맞아 죽은 주왕이 흘린 피에서 솟아나왔다는 전설이 있는 꽃 수달래.
내 언제 다시 청송을 찾아 슬픈 전설의 꽃 '수달래'를 꼭 만나리라. 청송, 아름다운 고장을 떠나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수려한 산수가 어우러진 청송이 여태껏 '청송보호감호소'라는 음울한 이미지로 대표되는 현실에 청송 출신 사람들의 분통이 얼마나 터졌을까? 혐오시설(?) 반대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얼핏 이해되어 웃음이 났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