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인민공훈배우 류드밀라 남 추모음악회

주한러시아대사관 그랜드홀에서 열린 추모음악회 실황과 이모저모

등록 2007.05.15 14:13수정 2007.05.1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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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5월 14일) 6시 30분부터 서울 정동에 있는 주한 러시아대사관 그랜드 홀에서는 러시아 인민공훈배우 류드밀라 남의 추모음악회가 열렸다. 류드밀라 남은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주연급 솔리스트로 활약하던 고려인 3세다.

메조소프라노로 풍부한 성량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러시아에서도 최고의 성악가로 알려진 류드밀라 남은 최근 몇 개월간 오랜 지병인 당뇨병으로 치료를 받아 오다가 병세가 악화되어 그녀의 고향인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지난 4월 5일 새벽(현지시간) 사망했다.


류드밀라 남 추모음악회가 열린 러시아대사관 그랜드 홀
류드밀라 남 추모음악회가 열린 러시아대사관 그랜드 홀이승철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난 지 40일을 맞아 주한 러시아대사관이 주관한 이날의 음악회에는 프랑스 대사 등 주한 외교관들과 그녀를 아끼고 음악을 사랑했던 1백여 명의 추모객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공연에 앞서 먼저 주한 러시아 대사 글레브 이바센초프는 인사말과 추모사에서 “류드밀라 남은 평범하지 않은 운명의 소유자였다. 한국인으로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러시아 인민공훈배우가 되었고, 세계적수준의 성악가로 유럽과 아시아, 미국 등의 최고의 무대에서 러시아 오페라 예술을 꽃피웠다.

류드밀라 남은 삶의 목적을 일찍이 깨달았는데, 그것은 러시아와 한국과 그녀의 흉내 낼 수 없는 목소리가 울리는 곳에서라면 어디에서든, 그녀의 노래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그녀가 우리와 함께 있었다는 것에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베이스 이연성의 무대
베이스 이연성의 무대이승철

소프라노 최현정
소프라노 최현정이승철

이어서 러시아연방공화국 의원인 류보미르 장은 나는 그를 하늘이 내린 비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빛을 발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이다. 그녀의 예술혼의 열정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다정다감하고 호의적이며 동정심 깊은 그녀의 성품을 난 항상 높이 사고 존중했다. 그와 함께한 좋은 추억들을 내 마음에 영원히 간직하며, 우리 곁을 떠난 그녀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했다.


또 재러시아 한인동포연합은 “러시아의 한국인들에게 그녀는 언제나 위대한 문화예술의 상징이었고, 예술인의 길에서 온몸을 다 바쳐 전념해온 긴 세월동안 프로페셔널리즘의 본보기가 되어 왔다. 러시아의 한국인 중 유일하게 러시아공훈배우 칭호를 받게 되면서 그는 자신의 예를 본보기로 인생의 경로에 놓인 다양한 재능을 가진 많은 젊은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큰 감흥을 일으키며 한국문화 보존과 발전에 온힘을 쏟았다.

러시아에서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한국에서 젊은 예술인들을 발굴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힘써 왔다. 또한 그는 자신만의 레퍼토리들을 무대에 올리며 한국사회의 수많은 공식석상에 적극적으로 참여 하였다. 굳이 과장하여 말하지 않아도 류드밀라 남은 다민족국가인 러시아의 문화적 자랑거리임이 분명하다. 그에 대한 기억은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테너 강현욱의 열창
테너 강현욱의 열창이승철

소프라노 김인혜의 무대
소프라노 김인혜의 무대이승철

추모사에 이어 곧 다섯 명의 성악가들이 출연하여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첫 번째로 출연한 베이스 이연성은 빅토르 지마노프의 피아노 반주로 포민의 ,만남은 인생에 단 한 번 찾아온다네. 와 쉬쉬킨 곡인 .밝은 밤. 을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특히 그는 러시아 유학 중에 류드밀라 남으로부터 받은 친절하고 자상한 누나 같았던 기억을 떠올리는 이야기를 하면서 ,미역국.을 끓여 놓고 .메기국.을 끓여 놓았다고 하여 어리둥절했었던 일화를 소개하여 관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또 추모음악회가 꼭 슬픔을 나누기만 하는 것은 아니며 그녀를 떠올리며 그녀가 즐겨 불렀던 노래를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부르고 들으며 함께 나누자는 말을 하여 숙연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도 하였다.

두 번째 출연자는 소프라노 최현정으로 림스키 꼬르싸꼬프 곡인 .꾀꼬리는 장미로 유혹하고. 와 오페라 황제의 신부 중 .마르파의 아리아.를 불렀다. 세 번째로 출연한 테너 강현욱은 글린까 곡인 .나는 기적의 순간을 기억한다네. 와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애브게니 오네긴 중 .렌스끼의 아리아.를 열창했다.

메조소프라노 김현주의 무대
메조소프라노 김현주의 무대이승철

글레브 이바센초프 주한 러시아대사와 피아니스트 백설
글레브 이바센초프 주한 러시아대사와 피아니스트 백설이승철

네 번째로 출연한 소프라노 김인혜는 백설의 피아노 반주로 루빈쉬테인 곡인 .멜로디.와 우리들의 귀에도 익숙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러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마지막 출연자인 메조소프라노 김현주는 역시 백설의 피아노 반주로 고 류드밀라 남이 즐겨 불렀던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중 .카르멘의 하바네라.와 .카르멘의 짚시의 노래.를 불렀는데 능숙하고 현란한 무대매너로 관중들을 사로잡았다.

이 음악회의 취재는 주한 러시아대사관의 이고리 K 레쉐또프 2등서기관의 협조로 이루어졌다. 그는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성악가인 고려인 3세 류드밀라 남의 타계 40일을 맞아 그를 추모하는 음악회를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류드밀라 남은 고려인 3세로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주연급 솔리스트로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후학을 양성해왔다. 풍부한 성량과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인민공훈배우의 명예를 부여받아 현지 고려인들의 자랑스러운 동포였던 인물이다.

그녀는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최초로 방한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아주 특별한 인상을 남겼으며 그 뒤로도 수차례 한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공연했다, 그녀는 러시아내의 고려인 및 교민 행사에도 빠지지 않고 줄곧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의사인 남편과 변호사로 일하는 아들이 있다.

러시아대사부부와 출연자들의 기념촬영
러시아대사부부와 출연자들의 기념촬영이승철

취재에 협조해준 레쉐또프 2등서기관
취재에 협조해준 레쉐또프 2등서기관이승철

그녀의 할아버지는 한국인과 일본인을 정확히 구별하지 못했던 당시 소련 당국에 의하여 일본인의 앞잡이라는 누명을 쓰고 총살을 당했다고 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 소련대표로 서울에 온 류드밀라 남이 무대에 서서 가장 먼저 소개한 것이 바로 고려인들이 겪은 민족의 수난사였다.

그녀는 1977년 소련 전국 글린카 성악 콩쿠르에서 은메달을 수상했고,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도 은메달을 수상했다. 모스크바 볼쇼이오페라단 프리마돈나로 활동하는 그녀의 수준 높은 무대를 기대했던 당시 서울의 관중들은 고려인 3세인 그녀가 먼저 쏟아내는 고려인들의 억울하고 쓰라렸던 아픔을 들으며 무대를 잊고 같이 눈물을 흘렸었다.

그녀는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한국인 아버지와 소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언제나 아버지의 나라인 대한민국을 잊지 못했다고 했다. 올림픽 덕분에 서울을 찾게 된 것이 꿈만 같고 성악으로 성공한 보람을 느낀다며 연신 눈물을 찍어냈다. 그녀가 사용한 고려인이라는 명칭도 그녀의 말을 통해서 처음 알려졌다. 그 전 까지는 그냥 조선족이라고 불렸었기 때문이다.

이날 밤 출연한 성악가들과 반주를 맡은 피아니스트 백설은 모두 러시아에서 음악을 공부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러시아에서 유학한 사람들이 러시아가 낳은 한국인 3세 류드밀라 남의 추모음악회를 빛낸 것이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류드밀라 남의 생전의 공연 모습을 영상으로 잠깐 볼 수 있었다. 출연자들이 모두 나와 인사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에 주한 러시아대사 글레브 이바센초프 씨에게 사진을 한 장 찍겠다고 요청하자 기꺼이 피아니스트 백설 씨와 나란히 서서 포즈를 잡는다.

옛 건물의 흔적처럼 남겨진 그랜드 홀 입구의 기둥 4개
옛 건물의 흔적처럼 남겨진 그랜드 홀 입구의 기둥 4개이승철

모든 순서를 마치고 그랜드 홀 입구 로비와 옆방에서 간단한 다과를 나눌 수 있었다. 음료수 한 잔을 마시고 대사관 경내를 둘러보았다. 이미 어둠이 내리 덮인 대사관은 옛 모습은 찾을 수 없고 현대식으로 잘 지어진 건물만 덩그렇다.

주한 러시아 대사관은 구한말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종황제가 일제로부터 몸을 피하여 .아관파천. 이라는 역사용어가 생긴 역사의 현장이다. 그러나 그 아픈 역사를 반추해 볼 수 있는 건물이나 흔적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고 다만 그랜드 홀 입구에 서 있는 고풍스러운 기둥 4개가 작은 흔적처럼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역사의 격동기에 일제의 압박을 피해 머나먼 이국땅으로 떠났던 한 동포의 3세 후손이 그 아픔만큼이나 절절한 쓰라림을 이겨내고 불렀던 아름다운 목소리가 역사의 현장 구석구석까지 아련한 감동으로 감돌고 있을 뿐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시인이승철 을 검색하시면
홈페이지 시가있는오두막집 에서 더른 글과 시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시인이승철 을 검색하시면
홈페이지 시가있는오두막집 에서 더른 글과 시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류드밀라 남 #추모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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