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없는 사람들에 대하여

엎드린 자세와 앉은 자세의 차이

등록 2007.05.15 08:23수정 2007.05.15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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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탔더니 오늘도 역시 한 할머니께서 무료신문을 수거하고 있다. 승객들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동서로 분주하게 움직이신다. 작은 키로 인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놓인 신문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앉는 자리를 밟고 올라가서라도 기어이 집어내신다.


아아. 그런데 할머니는 이상하게 너무도 당당하시다. 도무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지하철 안에 혼자 계신 듯하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태도가 영 불편해 견딜 수가 없다.

학교에 도착했다. 강의실에 들어가 앉았더니 오늘도 역시 몇몇 학우가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기 시작한다. 교수님이 앞에 계신대도 그들은 책상에 얼굴을 파묻는다. 가히 '교수의 부재'다.

가르치는 자는 배우는 자에게 그렇게 철저히 외면당한다. 그러나 외면당한 자는 외면한 자 앞에서 침묵한다. '참을 인'의 발로인지 '무관심'의 표출인지 알 수 없는 침묵이다. 오직 오지랖 넓은 나만 이 상황이 영 불편해 견딜 수가 없다.

실은 가끔씩 내가 너무 '꽉 막힌 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란 놈은 얼마 전 무료 신문을 그렇게 열심히 수거해봤자 하루 만원도 채 못 번다는 기사를 읽었음에도 할머니에게 '승객의 불편'을 야기한 대가로 '미안함'을 보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어쩌면 이건 '막힘'을 넘어 '잔인함'의 수준이다. 또 좀 피곤하면 엎드려 잘 수도 있는 거지, 나란 놈은 그걸 가지고 교수가 무시당했느니 하는 말을 늘어놓고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는 '태도'를 너무나 중요시하는 사회가 아니던가. 한 유명인사의 잘못에 들끓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다가도 그가 겸허히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동정과 관용의 물결이 넘쳐나는, 반대로 뻔뻔한 모습을 보이면 지독한 괘씸죄에 걸리는 곳이 바로 이 대한민국 사회 아니냔 말이다.

나는 그래서 아쉬운 것이다. 만약 할머니가 빈말으로라도 승객들에게 가벼운 양해를 구하는 성의를 보였다면 오늘 아침 6호선은 '찌푸린 눈살들' 대신 '기꺼운 배려'로 가득 찼을 것이다. 또한 엎드려 자는 학우들이여, 밀려오는 졸음은 불가항력적인 존재라 친다 하더라도 최소한 자세만이라도 예의를 차리는 게 어떻겠는가.


교수를 대놓고 소외시키는 '엎드린 자세'보다는 '앉은 자세'를 추구함으로서 '교수님, 수업을 정말로 듣고 싶지만 밀려오는 졸음을 당해낼 재간이 없네요, 죄송합니다'와 같은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편이 서로를 위해 더 낫지 않겠느냐는 말이다(농담 같아 보이지만 명백한 진담이다).

아,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꽉 막히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나는 기꺼이 '꽉 막힌 놈'이 되겠다. '예의'라는 건 자신의 상황 논리에 따라 때로는 지키지 않아도 무방한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의 불편을 조금은 감수하면서까지 지켜야 될 그 무엇은 아닐까.
#예의 #무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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