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죽음> 겉그림웅진지식하우스
<신갈나무 투쟁기>를 통하여 식물의 치열한 생존을, <숲의 생활사>를 통하여 숲 속 생명들의 위대함을 감동 있게 보여 준 '숲 학자 차윤정'의 새 책 <나무의 죽음>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나무의 또 다른 면들을 보여 준다.
저자는 "큰 나무의 죽음은 숲에 주어지는 위대한 유산"이라고 말한다. 나무는 죽고 쓰러지고 썩어 흙으로 돌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과정을 거칠 뿐이지만, 죽은 나무 한그루는 살아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생물들에게 먹이로서, 주거지로서 활용되기 때문이다.
자연 상태에서 제 수명을 다하고 죽어가는 나무. 이 나무는 단지 5%의 살아있는 세포로 유지되다가 완전히 죽는 순간 40% 이상의 살아 있는 세포로 채워지게 된단다. 죽어 쓰러진 나무 한 그루는 썩어서 흙이 되거나, 기껏해야 땔감으로 밖에는 쓰이지 않을 것 같은데….
이 나무 한 그루의 죽음은 숲과 또 다른 생명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딱따구리의 막중한 임무는 나무를 죽이는 것?
"고요한 숲에 뒤영벌 한마리가 긴 산란관을 나무줄기에 꽂습니다. 이 작은 벌의 산란이 곧 나무에게 어떤 일을 야기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맵시벌 또한 나무줄기에 산란관을 꽂고 알을 낳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나무속의 애벌레 몸속에 산란을 하는 것입니다. 나무줄기에 산란관을 꽂는 곤충들은 참 많습니다. 왜송곳벌의 소름끼치는 송곳은 어떤 단단한 나무도 비켜갈 수 없습니다. 목질 속의 애벌레가 깨어나면서 나무속을 갉아먹기 시작할 것입니다. 유지매미의 애벌레는 나무속에서 깨어나 나무 굴을 파고 땅속으로 들어가 나무뿌리를 먹고 자랍니다. 나무는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처럼 다양한 시련을 겪게 됩니다. 이런 시련들은 언젠가 큰 나무를 쓰러뜨리게 될 것입니다." - 책 속에서
나무에 산란관을 꽂고 알을 낳는 수많은 곤충들의 애벌레를 잡아먹고 사는 딱따구리는 단단한 나무를 뚫기에 적합한 특수한 뇌 근육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시속 20~25km의 속력으로 나무를 두드려도 정교한 연골로 이루어진 뇌 근육은 충격을 흡수하여 머리가 부서지는 것을 막아준다.
딱따구리는 왜 하필 딱딱한 나무를 통해서만 먹이를 얻는 생존 방식을 선택한 걸까? 그 이유를 확실하게 단언할 수 없지만, 여하간 딱따구리에게 걸린 나무는 재수가 없어 보인다. 인간들이 연장으로 구멍을 뚫듯, 당당하게 서 있는 나무에 모질게 구멍을 뻥 뚫고 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연을 깊이 알지 못하는 우리들의 얄팍한 생각일 뿐이다.
딱따구리는 아무 나무나 좋아하지 않는다. 구멍을 내려면 우선 부피가 커야 하는데, 그렇다고 부피가 크다고 모두 좋아하진 않는다. 재미있게도 딱따구리가 좋아하는 나무는 오래된 숲의 부피가 큰 나무,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죽은 나무에만(우리들 눈에는 살아있는 나무로 보일지라도 이미 죽은) 구멍을 뚫는다. 그것도 최근에 죽은 나무를 우선적으로.
더욱 명백한 사실은 죽어가는 나무의 본격적인 분해는 딱따구리가 구멍을 뚫으면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딱따구리의 부리에는 나무를 부패시키는 다양한 곰팡이 포자가 묻어 있고, 깃털에는 목재에 구멍을 내고 썩히는 다양한 곤충들이 서식하고 있다. 그래서 딱따구리가 나무에 앉는 순간, 이 균들은 나무에 상륙하여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숲 속에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죽은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