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열린우리당 의원.오마이뉴스 장재완
대전대협(대전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 첫 이야기는 지병으로 세상을 뜬 '윤재영'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됐다. 그의 이력은 얄궂게도 전대협의 처음과 끝에 맞닿아 있다.
윤재영은 87년 충남대학교 총학생회장 겸 제 1기 전대협 부의장을 역임했다. 이후 구속과 수배, 청년회 창립, 노동운동의 과정을 걷다 전대협이 해산되던 92년 천식으로 사망했다. 이날 모임에 이인영 열린우리당 의원이 참여한 것도 윤재영과의 인연 때문이다.
당시 전대협 의장을 지낸 이 의원은 "재영이가 자기의 진로를 상의해와 조언을 많이 했다"며 "조언을 받아들여 현장에서 일하다 쇄골을 다쳐 천식이 도졌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이 일로 부채의식에 울기도 많이 울고 후회도 많이 했다"며 "그 뒤에는 '목숨 걸고 뭐 하자'고 말을 못했고, 가졌던 원칙에도 관대해졌다"고 말했다.
동료였던 양동철(87년 충남대 문과대 학생회장)씨는 "재영이는 의식도 확고하고 사람들에게 다정다감했다"며 "살아있었다면 대전지역에서 많은 일을 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양씨는 "지금도 재영이가 못다 이룬 일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들의 삶은 죽은 자와 87년 6월항쟁-전대협 출범과 맞닿아 있다. 양동철씨는 대전에서 6월항쟁을 주도하고 유인물을 돌리다 구속됐다. 양씨는 "당시 전대협 출범을 생각하면 아직도 감동이 남아있다"며 "졸업 후 직장생활, 민주동문회 사무국장 등 일을 하다 지금은 작은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용옥(충남대 85학번)씨는 "학교 졸업 후 충남민족민주운동연합 간사일을 하다 90년대 중반까지 청년단체 일을 했다"고 말했다. 대학 때 탈패 동아리 활동을 한 이용운씨 (87년 목원대 투쟁위원장)는 줄곧 문화 관련 일을 해오고 있다.
윤종일(충남대 88학번)씨는 "'전대협은 한 때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던 이름이었다"며 "한총련으로 바뀌고 학생운동이 의미를 잃어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386정치권의 독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