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낙화암> 36 x 44cm, 비단에 수묵진채, 2005김현철
그림보다 여백이 많은 작품입니다. 낙화암을 보라고 그린 건지 여백을 보라고 그린 건지, 보는 사람을 당황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화가의 의도입니다. 그래서 김 화백은 이번 전시회 이름은 '그리지 않은 그림'이라고 했습니다. 화가가 남긴 여백을 보는 사람들이 채워넣으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여백은 보는 사람들에게 복잡한 삶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고, 잠시 휴식을 취해보라는 '휴식공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화가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치유의 색'으로 상징되는 초록으로 낙화암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화가란 화폭을 채우는 데 익숙해있기 때문에 이렇게 여백을 많이 남긴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따라서 여백은, 화가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도 하고 수없이 그렸다 찢는 자기극복 과정을 거쳤을 때 나타낼 수 있는 결과물입니다.
좀더 쉽게 설명하면, 화폭을 채우고 싶은 근질근질한 손과 마음을 다스린 뒤 이렇게 조금만 그려도 작품이 되겠다는 자신이 있을 때 낙관을 찍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한참 바라보면 여백의 아스라함을 통해, 백마강의 물줄기도 보이고, 구드래 나루에서 고란사로 가는 나룻배도 보이고, 백제의 쓸쓸함과 적막함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