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계와 선계를 이어준다는 쌍무지개다리 선암사 승선교.이철영
'천년고찰'. 천 년이란 얼마나 긴 세월이던가. 고작 몇십 년을 살아 본 중생에겐 그 시간이 너무 무겁다.
산사는 언제나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길의 끝에 있다. 그 길의 끝에서 시작됐을 계곡의 물줄기는 내가 걸어온 시간 속으로 역류하며 종종걸음으로 멀어져 간다. 시간도 물줄기도 붙잡을 수가 없다.
아득하다. 부도밭을 지난다. 득도하거나 득도하지 못한 이들의 표지석. 무덤이건만 죽음의 냄새는 없다. 침묵만이 그들의 염원을 대신하나, 정작은 그것도 아니다. 살아있는 자의 감각 속에 존재할 뿐이다.
승선교에 이른다. 어지러운 세상을 비켜 나와 피안의 세계를 갈구했던 이들에게 이곳은 정말이지 선계였을 것이다. 반원의 무지개는 물속의 다리와 만나 원을 이룬다. 물속에서 출렁이는 다리는 부서지지 않고 견고하다. 눈을 감고 물속에 비친 다리를 건넌다. 흔들리는 물이 나를 흡입한다. 다시 아득하다.
눈을 뜨니 꽃들이 지천이다. 룸비니(藍毘尼 '남비니'로 음역, 불교의 시조 석가가 탄생한 곳) 동산이다. 부처님이 오셔도 낄낄거리며 뛰어다닐 만큼 이곳 산사의 봄은 꽃으로 징글징글하다. 꽃은 식물이 동물을 유혹하는 장치다. 화려한 만큼 동물의 힘을 빌려 더 많이 수태하고 먼 신천지로 떠나갈 수 있다. 동물을 유혹한 꽃만이 살아남았고 동물은 꽃의 교태를 이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