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상담가 고광애씨서해문집
"부끄러워요. 늙은이가 한두 번 했으면 됐지, 뭐 특별한 발명을 한 것도 아니고, 새로운 이론도 아닌데 세 번씩이나 나대는 게 부끄러워요."
노년상담가 고광애씨는 세 번째 책을 낸 소감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이왕에 책을 낸 거 널리 알려서 많이 읽히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감독 아들이 칸에서 뭔가 터뜨릴 때를 맞춰서 책을 낼 걸 그랬다는 생각을 다했어요. 아들 덕 좀 보려고…. 호호호"
고씨가 말하는 '감독 아들'은 바로 임상수 감독이다. 임 감독 이야기를 하면서 고씨는 첫 책을 출판했을 때 일화를 소개했다.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는데 가족 소개를 하다가 둘째 아들이 감독이라는 이야기를 했단다. 별로 자랑스럽게 내세울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만든 임 감독이라고 하자 젊은 여기자들이 너무너무 좋아하더란다. 그래서 아들이 '유명한' 감독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단다.
하지만 고씨는 감독 아들이 만든 영화가 좀 민망하다. 어찌된 게 <처녀들의 저녁식사>에 나오는 처녀들은 한결같이 '그 짓'을 못해 안달인 건지. <바람난 가족>에는 감독 아들 덕분에 딸과 함께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식당에서 식사하는 장면에 잠깐 나와요. 딸은 뒷모습만 나왔지."
아이 셋 키운 전업주부, 그러나 '해바라기'로 살긴 싫었다
고광애씨는 아이 셋을 키우면서 전업주부로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혼자만 남았더란다. 다 자란 아이들이 제각기 독립을 해서 어머니 곁을 떠난 것이다.
"난 우리 어머니가 나만 바라보고 산 게 너무 지겨웠어요. 우리 어머니가 나를 너무 편애하셔서 내가 결혼하자 일주일 뒤에 짐을 싸들고 아예 우리 집으로 오셨잖아요. 어머니는 나만 해바라기 하면서 아흔셋에 돌아가실 때까지 같이 사셨어요. 그래서 나는 절대로 우리 어머니처럼 자식만 바라보고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어머니가 반면교사였다는 고씨는 50대의 나이에 '노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정말로 열심히 공부해서 예순넷의 나이에 첫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노년상담가로 활동하면서 방송도 하고, 꾸준하게 글을 써왔다. 가끔 강연을 하기도 한다. 2003년에는 두 번째 책도 출판했다.
세 번째 책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유경 기자와 의기투합해 내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힘들고 어려웠다. 책을 쓰는 사이에 아흔셋이던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남편이 병원에 세 차례나 입원했다.
한 꼭지를 쓸 때마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까지 겹쳐 애를 많이 먹었지만 이렇게 세상에 내놓으니 홀가분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한다. 어머니 때문에 책을 못 쓴다고 할 수도 있었는데 기왕에 하기로 한 것, 약속을 지키고 싶었단다.
노인이 비아그라 먹는 게 어때서!
"중년의 이야기가 제일 쓰기 어려웠어요. 다 지나간 이야기라서 내가 그때 어땠는지 다 잊었거든요. 제일 재미있게 쓴 건 '노인에 대한 오해' 부분이에요. 오해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어요. 한달에 두 번씩 의사한테 비아그라 타가는 노인이야기도 실화예요."
그 대목에서 비아그라를 처방한 젊은 의사는 "약을 먹고서도 하고 싶을까" 하면서 웃었다지만 고씨는 "근시가 안경을 쓰고서 잘 보이듯이, 원시가 돋보기를 쓰고 가까운 데의 것이 잘 보듯이, 비아그라 먹고 잘 되면 좀 먹고 해보겠다는데 왜 웃어요, 웃긴" 하면서 정곡을 찔러줬다.
고씨는 일흔의 나이지만 취미생활도 즐긴다. 주로 영화를 많이 본다. 연극이나 음악회, 뮤지컬 공연은 솔직히 너무 비싸서 갈 엄두가 안 나고, 그에 비해 관람료가 싼 영화는 많이 보러 간다. 좋다는 영화는 다 보지만 그냥 아무 영화나 보지 않는다.
"까다롭게 고르죠. 감독도 보고, 배우도 보고, 내 취향도 고려해서 좋다는 작품을 가급적 골라서 보죠. <마리 앙투아네트>는 친구와 서로 꼭 챙겨서 보자고 약속했어요."
전업주부로 살다가 첫 책을 내자, 살면서 그래도 이거 하나는 남기게 되었구나 했는데 세 번째 책을 내서 더는 바랄 게 없다는 고씨. 그래도 꼭 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면 이제는 '죽음'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번 책에서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그건 약간 건드리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좀 더 깊이 있는 죽음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것이다. 죽음에 관해 공부도 하고 있고, 어머니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게 많아서 한번 정리를 해보고 싶은데 여건이 될지 모르겠다며 환하게 웃는다.
[인터뷰 ②- 유경] "세 번째 책, 새로 태어난 아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