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엽무(竹葉舞)의 시필(試筆)' 한지에 수묵담채 66×68cm 1979. 사군자 중 하나인 대나무그림을 이렇게 날렵한 바람처럼 그리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김형순
동양화 사군자 중 하나인 대나무그림은 고암에게 역시 중요한 장르다. 독창적 안목과 번뜩이는 재기로 그린 한문 투의 제목 '죽엽무(竹葉舞)의 시필(試筆)', 이를 '춤추는 댓잎을 위한 드로잉'이라고 하면 어떨까, 하여튼 그의 천재기는 이런 그림에서 여실이 드러난다.
이런 화풍은 격렬한 춤과 율동을 연상시킨다. 잠시도 어느 곳에 머물 수 없고 앞으로 나갈 방향도 예측불허라고 할 수 있다. 걷잡을 수 없는 격정과 살아 움직이며 꿈틀거리는 기운 그리고 펄펄 날 것 같은 생동감이 그림에 넘친다.
고암의 색감은 한국적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 은은하고 깊이 있는 것들이 그 주조를 이룬다. 또한 오랜 세월 풍화작용을 견디어낸 색 바랜 연두색, 누런 황색, 낡은 갈색, 짙은 보랏빛, 묵은 포돗빛. 고색창연한 감청색 등을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고암의 그림에 나타나는 형태는 우리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활활 불타는 듯 열정적인 움직임과 고대 상형문자에서 보는 것 같은 반추상이미지, 자연에 기를 불어넣는 것 같은 형상이 많다. 그리고 어린 시절 월산과 용봉산에서 본 올빼미, 새색시, 늙은이라는 이름이 붙은 여러 모양의 바위를 그림 속에서 형상화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