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남해도 가천마을
나잇살깨나 잡수신 숫미륵
가슴 속에 남 몰래 감춰둔 흑심 하나 있지
으시럼 초생달 뜨는 밤이면 보쌈 하듯
건넛집 처자 암미륵 등에다 둘러업고서
설흘산 고개 넘어
뽕데기 넘어 야반도주 하리라
동네방네 얌전하기로 호가난 암미륵이지만
차마 드러내놓고 말 못할
남세스러운 소원 하나 있지
언젠가는 숫미륵 쏙 빼닮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
기어코 점지받고 말리라
암미륵과 숫미륵이 벌이는 분홍빛 연사를
동네 사람 아무도 눈치 못 챘지
벌레마저 잠든 한 밤중 몰래 만나
야릇한 수작 주고받으니 그럴 수밖에
아무리 입빠르고 발 빠른 아낙들이라지만
숫미륵의 응큼함을
암미륵의 막강한 내숭을 어찌 당해낼 수 있었겠는가
어느 화창한 봄날
동녘은 희끄무레 밝아오고
마을 앞 소치섬 실루엣으로 둥실 떠오를 때
난 보았네
동백꽃 몇 송이 터지고 난 뒤
암미륵도 덩달아 화들짝 꽃 피는 것을
그때 난 비로소 알게 되었네
비록 몇 천 년 늙은 민들바위일지라도
마음이 한 번 달뜨기 시작하면
꽃보다 화사하게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덧붙이는 글 | * 다랭이 논이 보여주는 경관이 뛰어나 국가가 지정하는 명승 제15호로 지정된 경남 남해군 가천마을에는 암미륵과 숫미륵 한 쌍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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