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바위 꼭대기에 하얗게 말라 있는 것이 천년향이다.
김은주
오전 9시에 통영 유람선 터미널을 떠나 거제도로 향한다. 갈곶도 십자동굴을 지나고 거제 해금강의 수려한 풍경을 지나는데, 저만치 하얗게 죽어 있는 천년향이 보인다. 역시 태풍 매미 때 파도를 뒤집어쓰고 말라죽은 것이라 했다.
천녕향은 몇 해 전에 왔을 때만 해도 유람선 안내하시는 분이 소리높여 자랑하던 나무다. 천리 밖까지 향이 난다고 등대 없어도 그 향 때문에 배들이 난파할 염려는 없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즐겁게 들었다. 이제 더 이상은 그윽한 냄새를 맡을 수 없다 하니 내심 속상하다.
거제 학동까지는 한참을 가야 한대서 선실에 들어가 앉아 있었더니 갑자기 사람들이 와글와글하면서 들어온다. 돌고래를 보았단다. 그것도 세 마리씩이나. 이럴 수가! 무리지어 헤엄쳐 가는 모습을 보았다는 소리에 당장 뛰쳐나갔지만 다시 볼 수는 없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영화의 첫 장면에 돌고래들이 나와서 그런다. "안녕! 안녕! 지구인들이여 안녕! 그토록 오랫동안 우리가 경고를 했는데도 너희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지. 이젠 안녕!" 하고. 영민한 돌고래들은 지구의 시계가 멈추는 때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는데, 나 역시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든다.
돌고래를 만나게 되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아쉽다. 아무리 기다려도 녀석들은 다시 나타나 주질 않았다. 그래도 이 바다에 돌고래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 일인가.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 하니까 기관장 아저씨가 돌고래 대신 바다 위에 잔뜩 떠 있는 아비들을 보여 주신다. 뾰족하고 길다란 낫처럼 생긴 부리를 가진 새.
아비들이 가끔씩 바다 속으로 자맥질하며 떠 있다. 이 새들도 한반도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어서 보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한다. 아비들에게 돌고래에게 안부를 대신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바다를 향해 밭가는 농부와 소,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