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있다가 우리 집 옥상으로 모여"

시골마을 여중생들이 마을 꼬맹이들과 함께 벌인 자율적인 일일 야간캠프

등록 2007.05.06 15:27수정 2007.05.0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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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 집 옥상에서 일일 야간 캠프를 해보았는가. 그것도 아이들이 솔선수범해서 벌인 판에 꼽사리 끼어 해보았는가. 이런 신나는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아이들의 불꽃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아이들의 불꽃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송상호
시골 마을에 있는 '미녀 삼총사'가 뭉쳤다. 그들은 올해 여중생 새내기들이다. 하지만 마을에 선배들이 거의 없어서 '마을 짱'을 잡고 있는 삼총사들이다.

'짱'이라고 무슨 싸움 같은 거를 잘하는 삼총사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일단 마을에서 뛰노는 아이들 중에서는 나이가 제일 많은 편이니 '짱'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아이들의 놀이와 뒷바라지를 책임진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니까 '왕언니 삼총사' 정도로 부르면 적합할 듯.

"야. 너희들 불꽃 사왔니."
"엉. 사왔지."
"그럼, 불붙이는 것은 양초로 하면 되겠네."
"그래 그건 우리 집에서 가져올게."
"그럼 너는 꼬맹이 아이들 책임져."
"알았어."
"그럼 조금 있다가 우리 집 옥상에서 모이는 거다."

아이들은 지금 불꽃 축제 중.
아이들은 지금 불꽃 축제 중.송상호
그렇게 사전 회의가 끝나면 행동 개시를 한다. 지네들이 알아서 하는 일이니 얼마나 신나고 좋은지 모른다. 누가 잘했니 못 했니 할 것도 없다. 손발이 척척 들어맞는다.

조금 있다가 무슨 조직이 모여들 듯 새까만 밤에 촛불 하나를 앞세우고 옥상으로 모여든다. 예정대로 '미녀 삼총사' 중 한 아이의 집 옥상에 모인다. 깜깜한 밤에 촛불이 인도를 하고 아이들이 몇 명 뒤따르는 걸 보니 흡사 무슨 성스러운 종교예식인 듯 보인다. 아이들의 쉴 새 없는 수다가 성스러운 분위기를 가볍게 만드는 것 빼고는.


옥상에 모인 아이들은 각자 불꽃을 들고 가져간 양초에 불을 붙인다. 붙이자마자 아이들은 불꽃을 들고 빙빙 돌리며 난리다.

"야. 신난다."
"이것 봐라! 내 거는 더 반짝거려."


그렇게 한참을 그러다가 불꽃이 다 떨어졌는데도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다. 환한 양초를 놓고는 놀이를 하잔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가 뒤돌아서서 외치면 다른 아이들은 조금씩 진으로 다가가는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몰래 몰래 진으로 다가가는 스릴은 달도 뜨지 않은 캄캄한 밤이라 더해진다. 양초에서 나오는 빛 하나, 그리고 멀찌감치 비쳐오는 마을의 가로등 불빛을 빛 삼아 아이들의 신나는 놀이가 이어진 게다.

"아이, 이것 말고 우리 뭐할까?"
"그럼, 여기 다들 모여 봐."
"우리 여기 앉아서 '007빵' 하자."
"그래 그게 좋겠다."

아이들의 대화가 무르익고 있다.
아이들의 대화가 무르익고 있다.송상호
이제 앉아서 하는 게임 놀이 시간이다. 신나게 이런 저런 게임이 이어진다. 같이 따라온 동생 녀석들이 잘 못 따라하니까 그 게임들도 시들해진다. 그래서 결국 이어지는 것은 시시콜콜한 대화의 시간. 사실 어른들이 보기에 시시콜콜한 것이지 아이들에겐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간인 게다.

"야. 니네반 선생님은 어떠시냐?"
"왜 그래. 넌 뭐 문제 있니?"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담임교사 이야기부터 친구이야기와 부모와 형제들 이야기까지 술술 끝이 없다. 괜히 대화의 시간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 옆에서 꼬맹이들은 나름대로 과자를 먹으면서 누나들의 대화를 듣느라 열심이다. 선배의 인생교육이 꼬맹이들에게 절로 되는 게다.

아까부터 마을 논에선 개구리 부족이 장엄한 합창을 해대고 뒷산에선 산새들이 제 보금자리를 찾느라 야단들인데 마을 아이들은 양초를 가운데 놓고 그렇게 이야기꽃을 한창 피우며 봄밤의 잔치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나는 거기서 그렇게 아름다운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한 명의 관객이 된다.

아이들은 두 개의 촛불을 밝히고 대화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이들은 두 개의 촛불을 밝히고 대화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송상호
#옥상 #007빵 #야간 캠프 #술래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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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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