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시의 넓은 도로최종명
중소도시인 웨이하이 시 산하 현시 급에 속하는 룽청시의 도로 사정은 매우 좋다. 넓고 한가롭다. 바닷바람도 흥을 돋우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 근황을 이야기했다. 아차,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룽청으로 갔다.
원래 내 계획은 웨이하이 시내 민박집에서 묵는 것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룽청으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룽청으로 들어서고 나서 미리 연락한 민박집 생각이 났으니 어쩌란 말인가. 정말 미안하다.
미안하긴 했지만 기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틀 후에 '장보고기념관' 공식 개관식 행사가 있는데 취재진으로 포함하겠다는 것이다. 예상보다 취재가 편해질 듯하고 비용도 줄일 수 있게 됐다. 올해 1월 초에 '해신 장보고'에 관한 내 글이 포털사이트 메인에 노출된 것을 이곳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 하니 어쩌면 그 보답일 수도 있겠다.
호텔 체크인(友谊宾馆)을 하고 바닷가로 갔다. 어촌이나 농촌을 둘러보고 싶었다. 기대와 달리 너무 삭막했다. 해초로 지붕을 덮은 집 몇 채가 눈에 띌 뿐 그저 황망한 바닷가였다. 아무런 집이나 들어가서 취재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나마 김태송씨 도움을 받으면 취재가 가능할 거 같았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무심하게 서 있는 집들을 보니 의욕만으로 취재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1시간 48위엔의 발 안마를 받으며 쉬는 동안 김태송씨도 자기 일을 잠시 보러 갔다. 딸이 이제 네 살인데 아이 엄마는 시 공무원이어서 서로 돌보는 듯하다. 안마 아가씨와 몇 마디 주고 받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전날 동생들이랑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갔으니 바로 곯아떨어질 만했다.
1시간 후 돌아온 김태송씨는 방송국 아나운서 곽 주임이 저녁 식사를 초대했으니 가자고 한다. 고맙기도 하고 바이지여우(白酒)를 먹어야 하니 죽음이기도 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56도와 38도를 섞어가며 이 지방 술인 지앙쥔(将军)을 큰잔(大杯)으로 12잔인가 마셨던 기억이 확 스친다.
그 이후로도 술 권하는데 천부적 재능을 지닌 이곳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다. 이제는 술 먹자는 이야기만 나오면 냄새가 날 정도다. 참 이상한 것은 그래도 늘 주면 마신다는 것이다. 게다가 오랜만이라 술이 그립기도 했다. 게다가 중국 요리를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어제 밤새 마신 한국 소주와 맥주 생각을 바로 잊었다.
식당에는 벌써 곽 주임과 그의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소개하고 인사하고 곽 주임 바로 오른쪽 자리에 앉았다. 한국에서 왔으니 귀빈 대접인 셈이다. 중국에서 특히, 산동성에서는 초대(칭커, 请客)한 사람이 문에서 가장 먼 쪽 중심에 앉고 그 오른쪽이 최고 귀빈, 그 왼쪽이 두 번째 귀빈이다.
그리고 귀빈 다음에 초청한 기관이나 기업 측 사람들이 직위 순으로 사이사이 앉는다. 또한, 초청자 정면 맞은 편 사람은 음식을 주문하고 나중에 계산도 하는 역할이며 때로는 술 분위기를 돋우는 역할도 한다. 정말 오랜만에 중국사람들과 더불어 즐겁게 술을 마셨다.
앞으로 6개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