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과 국가권력의 게임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의 핵심

등록 2007.05.06 14:52수정 2007.05.0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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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성격 - 피해도 경미한 폭행

지금까지 알려진 김승연 한화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은 외형상으로는 피해 규모도 경미한 단순 사건이다. 술집에서 난투를 벌이는 일은 우리 사회 구석에서 현실적으로 가끔 일어난다. 난투는 보통 가해자와 피해자가 불분명하여 합의로 끝나거나, 피해 상황이 크지 않으면 법적 처리는 별로 까다롭지 않게 종결된다.

그런데도 이번 사건이 시간마다 각 언론의 첫머리에 보도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김 회장이 동네 깡패가 아닌 10대 기업의 재벌이라는 점과 조폭 수준의 폭력이 행사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아직은 혐의 수준이지만 경찰이나 언론은 마치 범인은 분명한데 증거만 찾으면 된다는 식이다. 김 회장 본인 입장에서 보면 매우 억울한 측면이 있어서 한화측은 인권 침해를 들고 나오기도 한다. 일개 폭행 사건치고는 너무 요란하다. 왜 그럴까?

거물이라는 자체가 뉴스의 초점은 될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건의 진실 추궁과 방어를 위해 지금 전개되는 과정이 재벌과 국가권력 간에 힘겨루기 게임을 벌이는 양상이라는 점이다. 물론 좀 과장된 표현이지만 이 말은 상황의 문제성과 심각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아들을 아낀 나머지 보복을 했고 누가 살해된 것도 아닌 이 단순한 폭행 사건이 마치 <대부> 같은 영화를 연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김 회장이 설사 법망을 벗어나서 처벌을 면하게 된다 하더라도, 절대적 진실의 측면에서 그가 무혐의일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 재벌 회장인 그는 얼마든지 당당하게 알리바이를 주장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 했다. 그래서 경찰은 그의 혐의를 기정사실화한 채 어설프나마 공격을 하고 있고, 김 회장은 “나잡아 봐라”는 식의 법리 싸움으로 방어를 하는 게임이 연출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경찰 수사 - 늑장과 소극성

이 사건은, 발생 직후 이미 다른 언론에도 제보가 있었으나 연합뉴스가 4월24일 “모대기업 회장의 보복성 폭력 사건”으로 처음 보도함으로써 세간에 알려졌다. 연합뉴스가 기사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경찰이 내사(內査)한 내용인 ‘첩보보고서’를 입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취재 경위가 사실이라면, 이번 사건은 경찰이 계통을 밟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연합뉴스에 유출 내지는 제보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경찰 입장에서 보면, 언론의 경찰 출입기자가 취재를 위해 문의를 하는 것 자체가 곧 제보이다. 즉, 당사자의 고발 사건이 아니라 형식적으로는 경찰의 인지 사건이다. 그래서 분명히 관련자들을 내사해왔다.

그런데 왜 CCTV등 물증이 인멸되도록 수사가 지연되었을까? 인지 사건이므로, 혹은 경찰 상부의 누군가에 의해 그냥 덮어둘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 이것이 이 사건 수사를 극적으로 만드는 핵심이다. 전문 범죄인도 아닌 재벌 회장의 거동이니까 진실 규명에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갈팡질팡하고 있다.


경찰의 늑장 수사 형태에 대해서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때늦은 김 회장 아들의 출금조치, 업주 제공에 의해서야 확보하게 된 폐쇄회로 영상, 제보를 받고서야 본격화된 휴대전화 위치 추적. 게다가 가택이나 사무실 압수는 가히 코미디에 가깝다.

알리바이 추적은 수사의 기본이다. 김 회장 같은 거물의 행적은 초기에 몸으로 뛰었더라면 드러날 만도 했는데 늑장을 부리다 한화측의 조치로 알 만한 사람들은 입을 다물어버렸을 것이다. 회장의 거동을 가장 잘 아는 비서실장을 여태껏 소환조차 않은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5월3일 MBC가 보도한 협력업체 김 사장의 통화 대상으로 비서실장이 지목된 지 사흘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검토’ 중이다. 또 거짓말 탐지기 사용도 김 회장 소환이 다 끝난 이제야 추진 중이라 한다.

게다가, 집을 뒤져보니 아무 것도 없더라, 흙이나 신발에도 문제가 없더라, CCTV의 기록에는 안 나타나더라, 등등 마치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려는 듯이 친절하게도 알려주고 있다. 그런 물증이 있는 척 하는 심문법도 피의자의 심리를 압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데 경찰은 알아서 백기를 들고 있다. 필자라도, 그 소리를 들으면 자백하려다가도 더 안심하고 우길 것이다.

또, 5월4일 국회 행정위에 제출한 경찰 자료에 보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3월26일 ‘첩보보고서’를 작성해서 같은 달 28일 남대문경찰서에 하달했다. 거기에는 '피해 사실을 확인한 상태'라는 문구도 명확히 적시돼 있고 구체적인 적용 법조항까지 나와 있다. 그런데도 남대문 경찰서는 4월26일 “(첩보보고서)의 첩보가 ‘시중의 뜬소문’ 수준으로 구체적이지 않았다”고 했고, 서울경찰청도 30일 “미확인 첩보여서 뜬소문이라 보고하지 않고 관할서에 넘겼다”는 등 첩보보고서 내용을 은폐했다. 그래놓고는 해명하기 바쁘니 도대체 경찰이 왜 이러는가?

필자가 보건대, 이 사건은 물증으로는 드러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휴대전화의 통화기록이나 협력업체 사장의 제보가 확인되더라도, 증거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증거력은 극히 미력하다. 김 회장 자신의 폭행죄나 감금상해죄는, 김 회장 차남의 친구 A씨의 진술이나 피의자 본인의 재판정 자백이 없는 한 법원에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매우 적다.

수사가 미진한 이유 - 재벌의 위력

이번 사건을 국가 권력과의 게임으로 보는 이유는 혐의를 받고 있는 김 회장이 막강한 재벌이라는 점 때문이다. 재벌은 돈이 많을 뿐만 아니라 그에 버금가는 권력도 가지고 있다. 국가의 권력은 법치에 의한 제한이라도 받지만, 우리나라 재벌 회장의 권력은 그룹 내에서는 사실상 치외법권에 가깝다.

비서실이라는 이름으로 경호팀을 둘 수 있고, 목숨 줄을 쥔 것이나 다름없는 협력 업체를 조폭처럼 활용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래서 철거용역업체 사장의 제보 내용은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법망을 피하기 위해 막강한 변호팀의 도움을 얻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거기다가 더욱 중요한 것은 든든한 인맥이다. 이미 국회 행정위에서는 의원들이 로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이택순 경찰청장의 고교 동기동창인 유모씨는 이 청장이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지난해 1월4일 한화 계열사 고문으로 영입됐다. 두 사람이 이번 사건 발생 후 전화연락을 하고 함께 골프를 쳤다는 제보도 있다. 최기문 한화건설 고문은 전직 경찰청장이다. 홍영기 서울경찰청장은 그가 청장으로 재직할 때 부하인 혁신기획단장이었고, 장희곤 남대문서장은 최 고문의 경북사대부고 후배이자 경찰청장 재직시 최측근이었다.

경찰 스스로도 “사건 발생 2∼3일 후에 최기문 고문이 장희곤 남대문서장에게 전화로 수사진행 여부를 문의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수사 여부를 묻는 것이 남대문서장의 말대로 외압이 아니라 하더라도 고교 선배요 전직 상관의 전화인데 이 수사가 제대로 되겠는가? 이택순 경찰청장이 “최기문 전 청장에 대해서도 조사하여 의혹을 밝히겠다”고 했으니 두고 볼 일이지만, 설사 법에는 저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수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동네 주먹 싸움에도 파출소에 아는 순경 하나 없을까 하고 찾아다니는 것이 현실이다.

재벌의 간이 큰 이유 - 법치주의의 수모

사실 한화라는 재벌의 힘을 뒷받침할 만한 자산은 상당하다. 든든한 재력, 회장의 카리스마, 막강한 변호팀, 각계 요로에 얽힌 인맥 등.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일개 재벌일 뿐인데 감히 국가를 상대로 게임을 벌이겠는가? 그러나 거기에는 국가 자신의 약점이 있다. 바로 경찰이 알아서 기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재벌은 개인이나 조폭들과는 달리 민사든 형사든 법망에서 사실상의 특권을 누린다.

이 사건 역시 처음에는, 설사 한화가 로비를 하지 않았더라도 경찰 스스로 봐주려고 했기 때문에 수사가 미진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발도 아닌 인지 사건인데다 재벌이 개입돼 있으니 덮어주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런데도 사건이 공표되고 확대된 데는, 단정할 수는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면 경찰 내부의 사정 때문일 거라는 심증이 간다.

김 회장은 혐의를 벗을 수도 있고 처벌될 수도 있다. 또는 이 사건의 진실 규명은 이대로 미궁에 빠질지도 모른다. 어쨌든 현 시점에서 한화가 국가권력을 상대로 벌이는 게임의 근저에는 “법보다 주먹이 우선”이라는 사회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5월2일 미디어다음의 조사도 “우리 사회는 법보다 주먹이 우선”이라는 의견이 67%였다고 한다.

다만, 그 주먹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 개인은 그나마 겁을 내지만, 앞에서 말한 갖가지 자산을 보유한 재벌은 대담하게 게임까지 벌일 수 있는 것이다. 한화 김 회장도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법 앞에 엄정했다면 고발보다는 보복 폭행을 선택했다는 혐의로 시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국민들은 경찰의 수사를 지켜보면서 매우 답답해한다. 국가의 무기력에 울화통이 터지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법치주의가 주먹 앞에 이렇게 무기력한 수모에서 벗어나려면 이번 사건이 진실대로 밝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벌 앞에 한심한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던 국가권력(경찰)의 행태도 명백히 해명되어야 한다.
#한화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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