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나무다리. 갈수기라 수량이 줄면서 다리만 앙상해 보인다.장호철
4월의 마지막 주말, 아내와 함께 마을로 들어서자, 이 전통마을은, 이태 전과는 달리 말끔하게 단장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했다. 2005년 가을, 동료들과 함께 찾은 데 이어 두 번째 방문이다.
이태 전, 이 마을을 찾은 건 '외나무다리 축제'가 끝난 뒤였다. 이른바 지역 축제의 백화제방이랄까. 도처에 축제가 넘쳐나면서 이 외진 섬마을 사람들도 스스로 축제 하나를 조직해 냈는데, 그게 '무섬 외나무다리 축제'다.
마을 중간쯤의 강둑 아래 백사장과 건너편 뭍을 이은 추억의 외나무다리를 재현하여 사람들을 초대한 것이다. 나무를 덧대 만든 이 옛날식 외나무 다리는 폭 30㎝, 길이 150m.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다.
80년에 콘크리트 다리(수도교)가 생기기 이전까지 마을과 '바깥'을 이어준 것은 삼면을 돌아가며 놓은 외나무다리였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를 이어 다리를 놓았고, 이 다리를 건너 뭍의 논밭을 오가며 농사를 지었다.
장마가 지면 다리는 불어난 물에 휩쓸려 떠내려갔고,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다리를 다시 놓아야 했다 한다. '시집오는 새색시는 가마 타고 다리를 건너오고, 망자는 상여를 타고 그 물을 건너가는' 고단한 세월이 350년이었다.
축제는 이태째 잘 치러졌던 듯했다. 이태 전과 같이 강둑 아래 게시판에는 '고향 외나무다리 이어가기 참여자 명단'이라는 제목 아래, 축제를 위해 기부한 사람의 명단과 그들이 낸 많지 않은 기부액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고액의 기부자가 없다는 것은 이 축제가 무섬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 소박한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내겐 읽혔다. 때로 축제의 주인은, 거액의 '돈'이 되거나 그 돈으로 축제를 지배하는 '부자'가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외나무다리에서 바라보는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