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30일 오후 2시 세실 레스토랑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정운찬 전 총장이 대선 출마 포기선언 기자회견을 한뒤 입을 굳게 다문채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새삼 확인된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경제학자이지 경영학자는 아니였다. 그는 정치의 흐름과 이치는 간파했지만 실천을 통해 그걸 현실화하는 데에는 무력했다.
대선 불출마의 변이 증명한다. 그는 "정치는 비전과 정책제시 뿐만 아니라 이를 세력화하는 활동"이라고 규정한 뒤 "그럴 만한 자격과 능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언론이 풀이한다. "그럴 만한 자격과 능력"이 돈과 조직이었다고 설명한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지엽적이다. 돈과 조직은 파생된 문제다. 줄기는 그게 아니다. 정운찬 전 총장이 돈과 조직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근본문제를 먼저 짚어야 한다. 정운찬 전 총장이 독자적 정치세력화만이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한 곡절이다.
"정치에 나가 봐도 갈 집이 없다"
힌트가 있다. 지난 주말 <중앙일보> 기자와 만난 정운찬 전 총장이 한 말이 있다.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만약에 열린우리당 쪽으로 가게 된다면 지분정치를 하게 될 것 같다. 김근태·정동영 전 의장과 천정배 의원 등이 지분을 주장하면서 관여하려 할 텐데 그렇게 해선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그럴 바엔 차라리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나 박근혜 전 대표가 대통령을 하는 게 낫다. 정치에 나가 봐도 갈 집이 없다."
부인하기 힘든 진단이다. 범여권 통합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준다.
범여권이 모색하는 통합은 횡적 연대다. 유력 주자를 맨 앞에 놓고 일렬로 도열하는 통합이 아니다. 사실 그건 통합이 아니라 흡수다. 횡적 연대는 유력 주자를 가운데에 놓고 그 좌우로 길게 늘어서는 것이다. 그래서 횡적 연대, 통합을 공존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공존을 가능케 하는 건 상대의 존재기반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어깨동무한 분파의 지분을 인정해야 한다.
정운찬 전 총장이 거부감을 느꼈던 이유, 그래서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모색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자칫하다간 자신이 '얼굴 마담'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컸다.
범여권이 정운찬 전 총장을 선호했던 이유도 똑 같다. 그는 정치 기반, 즉 돈과 조직이 없었다. 그래서 횡적 연대의 접착제로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권력 분점을 요구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이제 없다. 다른 누군가가 통합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게 누굴까? 정운찬 전 총장의 족적을 '교본'으로 삼으면 정답은 어렵지 않게 도출된다. '얼굴 마담'을 자임하지 않는 한 정치권 밖 인사가 중심에 설 수는 없다.
남는 사람들은 딱 한 부류다. 직업 정치인들이다. 손학규·김근태·정동영·천정배 등의 이름이 늘어선다.
지분 나누기, 범여권 통합의 실상
문제가 있다. '정운찬 교본'에 따르면 직업 정치인을 중심에 세우는 통합이 더 어렵다. '지분정치'를 이루기엔 이들의 권력의지가 너무 크다. 그렇다고 단정할 일은 아니다.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직업 정치인의 장기, 즉 탁월한 적응력과 빼어난 거래 기술로 '지분정치'에 기름을 칠 수도 있다. 모두 잃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얻는 게 나을 수 있다.
그런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지분 나누기는 '내부' 문제다. 내부를 단속한 다음에 국민 앞에 선다고 몰표가 나오는 건 아니다.
이들에겐 흠결이 있다. 누구는 탈당의 멍에를 쓰고 있고, 다른 누구들은 참여정부의 공과에 발이 잡혀있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국민의 지겨워하는 감정이 보태질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게 연출되면 직업 정치인의 통합은 요행수나 암수에 기대야 한다. 한나라당의 자체 분열로 어부지리를 얻는 요행수, 또는 분열적 지역구도에 희망을 거는 암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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